[인터뷰] 세계는 왜 '푸른아시아'를 주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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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는 왜 '푸른아시아'를 주목할까?
유엔 '환경노벨상' 수상자 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 인터뷰
  • 2018.09.12 12:15
  • by 공정경 기자

"이런 모델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게 놀랍다."

2014년 사막화 방지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생명의 토지상'을 푸른아시아가 수상했다. 유엔에서 받은 상으로 우리나라 최초다. 유엔은 2012년부터 생명의 토지상을 제정해 바람직한 기후변화 대응모델을 개발한 정부나 민간단체, 개인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푸른아시아 모델을 최고상으로 결정했고 사막화가 진행 중인 160개국에 이 모델을 권고하고 있다. 유엔이 푸른아시아를 생명의 토지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혜택이 다양하다. 둘째, 공유하기 쉽다. 셋째, 에코투어로 국제협력을 실행했다.

선정 이유에는 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지 숲을 얼마나 많이 조성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다. 나무 많이 심기로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 같은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가뭄 대책을 마련하고자 1990년대부터 매년 수만 제곱킬로미터의 숲을 조성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인공 숲은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 넓다. 인도는 서울 전체 면적의 3.5배 되는 20만 헥타르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든 공로로 2013년에 생명의 토지상을 받은 바 있다. 

그에 비해 푸른아시아가 몽골에 나무를 심은 면적은 다 합쳐봐야 여의도의 1.5배인 450헥타르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엔은 왜 푸른아시아를 주목했을까? 그 땅에 사는 구성원과 공동체가 함께 혜택을 누리는 공동체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막화 방지는 숲을 만드는 게 아니라 먼저 토양을 복원하는 거다. 그리고 생태복원이다. 생태복원에는 사람들 삶의 복원도 포함돼 있다. 숲을 만들면 증발산작용으로 땅에 있는 물기가 다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나무를 작게 키우는 게 중요하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2000년부터 사막화된 몽골지역에 나무를 심고 있는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푸른아시아 전 사무총장이자 '한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 저자이다. 몽골은 대초원의 나라다. 하지만 몽골은 지난 100년 동안 북극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온도가 가장 많이 오른 나라다. 지난 100년간 지구전체의 평균 온도가 0.89도 상승했는데 몽골은 그의 2.5배인 2.14도가 올랐다. 

원래 국토의 40%가 고비사막이었지만 2000년대 서쪽과 동쪽으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지금은 사막화된 땅이 78%에 이른다. 초원이었던 땅은 황폐해져 모래먼지 폭풍이 일어나고 호수 1166개, 강 887개, 샘 2096개가 말라버렸다. 모래먼지 폭풍 발생횟수도 중국은 연평균 2.5일이지만 몽골은 20년 전 평균 10회에서 48회, 최근 60회까지 늘었다.

몽골 서부 황사 발원지인 바얀누르에 부는 모래먼지 폭풍 [사진제공=푸른아시아]

"바얀누르는 호수가 15개가 있는 초원지역으로 과일나무도 키웠었다. 그런데 2007년에 보니 호수가 9개가 사라지고 모래땅으로 바꿨다. 몽골이 급속히 사막화되는 이유는 기온상승으로 인해 영구동토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05년도에 땅을 3미터 파봤는데 여름에도 땅이 얼어있었다. 영구동토층은 일 년 내내 얼어 있다가 여름에 이 층이 조금씩 녹으면서 강과 호수, 초원을 유지했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영구동토층이 80%가 사라졌다."

기후변화로 초원이 사라지고 조드(dzud,기후대재앙)이 발생하면서 유목민들은 환경난민이 됐다. 2002년 화이트조드가 발생했다. 영하 50도의 날씨가 20일 동안 지속되자 눈이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겨울을 연명하기 위해 가축들이 앞발로 아무리 긁어도 마른 풀과 뿌리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천만 마리가 굶어 죽었다. 이로 인해 2002년 한해만 2만 가구, 10만명이 환경난민이 된다. 2010년에 또 화이트조드가 발생해 가축 850만 마리가 굶어 죽었다. 2015년에는 블랙조드, 즉 장기간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으로 100만 마리가 굶어 죽었다. 살아남은 가축도 영양실조로 겨울을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1000만 마리를 도살했다.

1000만 마리를 도살했지만, 그해 겨울 고깃값이 크게 상승했다. 유목민은 여름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 여름에는 가축의 살을 찌워야 하기에 주로 유제품을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할 겨울, 여느 해보다 많은 가축을 도살했으니 당연히 가격이 더 싸야 하는데 오히려 고깃값이 2배 이상 올랐다. 그 이유는 창고업자들이 고기를 창고에 쌓아놓고 비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사재기로 막대한 돈을 벌고 유목민은 가축도 잃고 고기도 비싸게 사 먹어야 했다. 자본은 기후변화로 어떻게든 돈을 벌지만 취약한 사람들은 모든 걸 잃는다.
 

몽골 환경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 있는 울란촐로트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사진제공=푸른아시아]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은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몽골인구의 10%가 이런 환경난민이다. 수도 울란바토르로 간 환경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쓰레기 매립장 주변에 정착해 고철이나 공병 줍는 일이 대부분이다. 울란바토르 성긴하이르한이라는 지역에 환경난민이 많이 모여 사는데, 이 지역 주민 20만명 중 10만명이 환경난민이다. 유목민은 행정구역이동이 안 되기 때문에 거주지를 벗어나면 불법이주민이 된다. 몽골정부는 이 지역에 수돗물과 전기도 공급하지 않는다. 불법이주민은 제대로 된 일자리는커녕 학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쓰레기 더미에 기어 올라가고 아빠는 갑자기 난민 신세가 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늘 술에 취해있다.

"몽골에는 공장도 없다. 그런데 여기에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2.14도가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온실가스를 발생시킨 이웃나라 때문이다. 몽골은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의 나라가 일으킨 문제에 직격탄을 맞은 피해지역이다. 산업 국가들이 잘 먹고 잘 살사는 동안 엉뚱한 나라가 다 망가져 버렸다. 우리가 몽골에 나무를 심고 땅을 살리는 것은 몽골을 돕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다."

"나무만 심어서는 안 된다. 사막화 방지에는 나무심기가 최고라고 해서 처음 3년 동안 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그런데 나무가 남아나지를 않았다. 땔감으로 베어가고 가축의 먹이로 쓰였다. 인간의 이해관계로 봤을 때 나에게 소득을 주지 않으면 나무는 그냥 땔감일 뿐이다. 그래서 차차르간(비타민나무)이라는 과일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이코노믹 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바얀누르는 사막화의 최전선에 있는 지역이지만, 사회주의 시절에 차차르간 산지로 유명했다. 차차르간 열매는 몽골에서 신이 준 선물이라고 불린다. 2002년 화이트조드 때 바얀누르도 유목민 100가구 500여 명이 환경난민이 됐다. 2007년 사막화된 땅 40헥타르에 비타민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소득이 보장되자 주민들은 나무 키우기에 정성을 들였고 조림장 면적도 120헥타르로 늘었다.

마을 전체 면적이 1200헥타르, 나무를 심은 땅은 120헥타르. 전체의 10분의 1에 나무를 심었는데 2012년 이후 마을을 휩쓸던 모래먼지 폭풍이 사라졌다. 모래땅이 숲으로 바뀌고 소득이 보장되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붐이 불었고 울란바트로로 떠났던 환경난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기 전 황폐한 모습과 8년 후 달라진 모습

"2013년부터 바얀누르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돌다 돌아온 환경난민이 700명이나 되고 1400명이던 인구가 2000명으로 늘었다. 난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코노믹 존을 만드는 거다. 바얀누리는 현재 마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비타민나무열매를 가공해서 팔면 몽골에서 10배, 한국으로 수출하면 도매가격으로도 50배의 수익이 난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가공공장을 만들고 매장도 만들면 환경난민이 자립할 수 있는 일련의 모델이 나온다."

"미얀마도 마찬가지다. 미얀마는 차차르나무 대신 깨를 심었다. 미얀마는 더운 나라라 음식을 기름에 다 볶는다. 우리나라는 깨를 볶아서 참기름을 내리지만 미얀마는 볶지 않고 내린다. 깨를 가공하면 10배 정도 수익이 높아진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방앗간을 만들면 참기름을 팔아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고 시설이용료도 받을 수 있다. 시리아 같은 경우에는 대추야자를 가공하면 돈이 된다. 가공하면 10배 정도 돈이 되는 작물, 그 문화에 통용되는 것들을 찾아 커뮤니티 방식으로 풀어가는 메커니즘이다. 우리 방식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따라 하기가 쉽다."
 


바얀누리 모델이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열심히 일 해봤자 솜장(우리나라 군수에 해당하는 공무원 직급)이나 국회의원, 부자들에게 다 빼앗길 거라며 처음에는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수확한 감자 3톤을 앞에 두고 ‘힘 있는 자들은 감자 한 알도 가져갈 수 없다’고 말하며 주민들에게 어떻게 나눌지 직접 결정하라고 했다. 주민들은 감자 한 알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30%는 씨감자, 20%는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50%는 n분의 1로 나눈 후 가족수를 곱해 배분했다. 자신들이 농사지은 수확물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소유로 돌아오자 주민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얀누르에서는 나무를 심고 키우는 사람들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했다. 만일 공동체 없이 생태만 복원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처음부터 농장의 모든 것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합의했다. 공동 재산이기에 개인이 공동체를 나가면 나무 한 그루도 가져갈 수 없다. 전체 생산물 중 30%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50%는 인원수대로 나누고 나머지 20%는 주민 조직의 운영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이 원칙은 계속 잘 지켜졌다."

2013년, 마을공동체에 위기가 닥친다. 토지사용연장을 해야 할 시점 솜장이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사막화된 땅에 아무 관심 없던 권력자들이 땅이 살아나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푸른아시아는 외국단체니 나가라고 했다. 잘 뭉쳐있던 주민들이었지만 워낙 힘이 없는 환경난민들이기에 바람에 풀이 눕듯 6개월 동안 꿈쩍도 안 했다. 드디어 뺏기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주민들과 회의를 했다. 이거 빼앗기면 더 이상 갈 데도 없다, 이거 빼앗기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땅은 나라 것이어도 차차르나무는 우리 꺼야, 감자도 우리 꺼야, 모래땅을 비옥하게 만든 것도 우리야, 우리 것을 이렇게 빼앗길 순 없다고 말하며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40가구 160명이 몰려다니며 유목민 1000명이 모이는 큰 회의부터 곳곳을 다니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40가구 160명이면 그 지역 인구의 10%다. 토지연장을 안 해주는 이유가 밝혀지면서 여론이 확 바뀌기 시작했다. 솜장에 대한 탄핵 의견까지 나오자 결국 솜장이 두 손을 들고 허가해줬다. 그 뒤로 주민들은 솜장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잘못된 일을 큰소리로 따질 수 있게 됐다. 자신들의 힘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울타리를 중심으로 나무를 심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한 눈에 보인다. [사진제공=푸른아시아]

푸른아시아는 몽골 8개 지역, 미얀마 2개 지역에 공동체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2015년 몽골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 등 7개국으로 구성된 '중앙아시아 사막화 방지 전략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정부 대표, 유엔 관계자 56명이 푸른아시아 조림지를 하루 종일 둘러봤다.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는 사례는 많이 봤지만, 빈곤까지 낮춘 모델은 처음 봤다, 행정지원을 해줄 테니 자기네 나라에도 이 모델을 도입해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국가가 기후 변화 대응과 빈곤 감소 효과가 있는 공동체 모델을 배우고 싶어 한다. 이 모델이 다른 곳에서도 잘 뿌리내려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푸른아시아의 활동은 테라시아(Terrasia)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테라시아는 테라(Terra)와 아시아(Asia)의 합성어로 아시아 땅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이자 운동이다. 우선 아시아 26개 나라의 시민단체, 종교계 지도자들이 모여 아시아종교간기후생태네트워크(Inter-Religious Climate & Ecology Network)를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대자본이 움직여야 하지만, 시민들이 먼저 나서 기후변화 현장을 바꾸기 위해 아이디어, 성공모델, 자원을 공유하고 연대하려 한다."
 

오기출 이사가 한 사람이 일생에 걸쳐 10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 이사는 '나무 10그루 심기 운동'을 제안했다. 한 사람이 평생 10그루의 나무만 심어도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된다고 한다. 10그루 나무심기는 '파괴'에서 '살림'으로 인간의 의식을 진화시키는 운동이다.  나무를 심으면서 생각과 행동이 변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의식의 진화, 생활방식의 변화 없이 해결할 수 없다. 인류의 5%만이라도 10그루 나무심기를 실천한다면 이는 큰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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