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을관리협동조합, 고양은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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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을관리협동조합, 고양은 이렇게 간다
고양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정광섭 센터장 인터뷰
  • 2018.12.31 09:41
  • by 공정경 기자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에 따라 마을관리협동조합 육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일 국토교통부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신협 중앙회, 새마을금고 중앙회와 '마을관리 협동조합'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마을관리협동조합은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에 설립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주민이 주도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에 공급되는 임대주택, 생활SOC 등을 운영·관리하고, 태양광서비스, 마을상점, 돌봄서비스 등의 업무를 맡는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마을관리협동조합 100곳 설립을 목표로, 3년 동안 초기 조합사업비 9천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신협과 새마을금고는 사업지 내 마을관리협동조합 운영지원전문기관으로 참여한다. 국토부는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관계기관과 함께 마을관리 협동조합의 성공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마을관리협동조합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 만부마을, 안양 명학마을, 충주 지현동, 공주 옥룡동에서 주민교육을 하고 사업계획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마을관리 협동조합 운영에 착수할 계획이다.

마을관리협동조합의 핵심은 주민주도이다. 주민주도는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민주도의 마을관리협동조합을 고민하는 고양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정광섭 센터장(도시공학 박사)을 만나 고양은 어떻게 진행할 예정인지 들었다.

고양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정광섭 센터장 [사진제공=고양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체성, 즉 마을의 정신, 마을의 자존감이 높은 지역들은 잘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공동체성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쉽게 말해 우리 마을을 움직일 사람이 없는 거다. 잘 되는 지역과 안 되는 지역을 분석했을 때 마을을 움직일 리더급 주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20~30년 산 원주민, 선한 빅마우스가 한 두 명이라도 있으면 그 지역은 잘 가기 시작한다. 이분들이 도시재생을 이해하면서 오늘은 오른손에 한 명, 내일은 왼손에 한 명 손을 잡고 오신다. 그렇게 모이다보면 최소 30명은 유지된다. 1월에 100명 모여도 12월에 가면 다 빠져나가고 20~30%만 남는다. 하드웨어(공간과 시설)는 주민들의 내용을 푸는 외형적 그릇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지역에서 돌아갈 콘텐츠다. 콘텐츠는 주민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려면 우선 주민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촘촘해야 한다."

정 센터장은 기초지자단체에서 주민교육지원을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 주민 역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주민교육지원을 설계할 때도 체계적으로 촘촘하게 해야 한다. 기본교육이 끝나면 소규모 주민제안공모사업이 바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는 교육과 주민제안공모사업이 바로 이어지지 않아 교육받은 주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거나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이 공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50만원도 주고 100만원도 주는 소규모 주민공모사업을 바로 열어줘야 한다. 소규모 공모사업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경험을 쌓는 기회다. 데이터가 필요하다. 저녁마다 모여서 협의하고 시도했는데 이분들은 왜 실패했을까? 100만원만 지원했는데 이분들은 왜 잘 됐을까? 어떤 모임은 노력이 70%, 어떤 모임은 노력은 30%인데 운이 좋았어. 이게 우리 마을에 기가 막히게 잘 맞았어. 이런 데이터가 필요하다. 다음 기수 교육할 때 실패하지 않게 이 데이터를 주고 우리 마을에 맞는 사업들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중급교육은 회계교육부터 본격적으로 마을기업이나 사회적경제조직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이때는 공모사업비를 올리고 컨설턴트나 튜터가 붙어 맞춤형 컨설팅을 해야 한다. 그 다음은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학습모형을 만들어 주는 단계다. 전문가와 행정이 다 빠져나가도 스스로 운영할 수 있게끔 마을 워크숍, 성과 공유회 등을 진행한다. 이렇게 일 년 단위로 촘촘하게 3~4년 정도 역량강화 교육을 하면 마을관리협동조합이 가능하다고 봤다.

"도시재생 교육을 4년 했다고 해도 실제 교육 시간을 따져보면 두세 달밖에 안 된다. 실질적으로 두세 달 교육하고선 4년 동안 역량 교육했으니 마을협동조합 만들어라? 누가 만들겠나. 주민들 교육할 때도 초반부터 공동체 이익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공동체성을 이야기할 때 공동체 이익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다. 초기에야 관심이 있으니까 주민들이 그냥 모인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친다. 처음부터 주민들에게 3~4년 동안 노력하면 이런 공동체 이익이 있다고 보여줘야 지치지 않고 갈 수 있다. 그게 마을기업이든 마을협동조합이든. 제대로 만든 사회적경제조직이 공동체성을 더 높인다. 결국 이익을 보여 준 거니까."

 
정 센터장은 '지역 전체'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통한 '스토리텔링형' 지역공동체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평 에버그린에버블루협동조합이다. 에버그린에버블루협동조합은 생들기름을 생산하는 마을기업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전원의 삶을 꿈꾸던 사람들이 양평으로 이사해 전원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주말에 놀러 오는 자식들에게 텃밭에서 직접 키운 토마토, 채소를 주고 싶은 기쁨에 열심히 농작물을 키웠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멧돼지가 내려와 농작물을 다 파헤치고 먹어버렸다. 마을로 내려가서 원주민들과 이야기하다보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마을 전체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모여 해결방법을 모색했다. "멧돼지가 호랑이 똥을 싫어한 데." 동물원에 전화해서 호랑이 똥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전국에서 그런 전화가 너무 많다며 도와주기 어렵다고 답한다. "하긴, 호랑이가 몇백 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맨날 똥만 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제공=신용보증기금]

최소한 인명 사고는 막아야 하기에 멧돼지가 내려오는 길목에 울타리라도 치자며 다 같이 마을을 쭉 둘러봤다. 둘러보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농작물은 다 피해를 봤는데 희한하게 들깨밭만 멀쩡했다. 전문가에게 물었다. 멧돼지가 들깨를 호랑이 똥처럼 싫어한다고 한다. 여기저기 들깨를 심었다. 그랬더니 멧돼지 피해가 없어졌다. 들깨 수확 철이 되자 온 마을에 들깨 냄새가 진동하고 들깨가 넘쳐난다. 넘쳐나는 들깨를 어찌할지 주민들이 모여 또 고민했다. 생들기름이 몸에 좋고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는 의견에 생들기름을 짜서 팔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아 아예 마을기업으로 만들었다. 수익이 높아지고 지역주민을 고용하자 그동안 공동체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공동체성은 더 강해졌다.

"성공하려면 그 지역 전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헷갈릴 수 있다. 주민제안공모사업을 할 때 자세히 보면 3명, 5명이 겪고 있는 특정 지점들이다. 지역 전체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 그 지역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지역 전체 문제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주민역량 강화하는데 최소 3~4년, 성과가 나오는데 7~8년은 걸린다고 본다."


도시재생지에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재생지 안에서 소비가 연속적으로 최소 3~4번은 발생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재생지에 갔지만, 카페도 없어서 인근에서 소비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스토리가 있는 도시재생지에 가서 하드웨어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공연도 보고 기념품도 사 올 수 있게끔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3~4번 연속적으로 소비가 일어나면 매출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매출과 관련된 콘텐츠는 사회적경제다."

국토부가 계획한 마을관리협동조합 사업은 5가지로 주택관리서비스, 집수리서비스, 사회적주택, 에너지자립, 마을상점이다. 고양 도시재생센터는 5대 사업뿐 아니라 갈등관리, 스마트도시서비스, 콘텐츠 시설관리, 공유기업 등으로 영역을 열어 놨다. 마을관리협동조합의 역할도 Fail safe(실패해도 괜찮아)와 Fool proof(모자란 건 다 함께)를 위한 현장단위 플랫폼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주민들의 역량이 처음에는 약하겠지만 촘촘하게 교육지원을 하면 집단지성이 될 거다. 주민들의 경험과 노하우, 실패 데이터, 성공 데이터, 인적자원 데이터가 현장지원센터에 쌓일 거다. 보통 사업이 끝나면 현장지원센터가 철수하면서 3~5년 동안 쌓인 데이터가 다 사라진다. 얼마나 아깝나. 현장지원센터가 철수하고 행정이 빠져나가도 쌓인 데이터를 공동체가 관리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을 만들어도 모든 것이 항상 잘 돌아갈 순 없다. 사람한테 빨간불이 들어올 수도 있고 정치 환경이 바뀔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모자란 것은 보완하면서 플랫폼이 계속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Fail safe와 Fool proof를 위한 현장단위 플랫폼

공유기업의 경우 활동영역을 해당지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되 사업화에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은 만큼 수익의 5~10%를 마을관리협동조합으로 환원하는 구조로 설계하고 있다.

"쇠퇴한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도 수익의 일정 부분이 환원되면 마을관리협동조합은 돌아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청년, 그 지역의 역량 있는 사회적경제조직, 주민이 함께 들어와서 나중에 행정이 빠져나가도 지속적으로 돌아가게끔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도시재생의 역할은 진단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률 몇 퍼센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업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그 지역에 맞는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실업률이 A 지역은 20%, B 지역은 12%다. 흔히 실업률만 보고 A 지역이 심각하다며 A 지역은 매달 취업 알선 프로그램를 열고 B 지역은 격월로 취업 알선 프로그램를 연다. 실업 원인을 분석하지 않으니 대부분 비슷한 실행 대안들이 나온다. 두 지역의 실업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봤더니 A 지역은 무관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B 지역은 질병, 기술부족, 이혼이었다. 

무관심이 높은 A 지역에 매달 취업 알선 프로그램를 돌린들 취업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나. 하지만 B 지역은 매일 공사장에 다니던 김 씨가 일하다 다쳐서 일을 못 하고, 신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이 씨는 신발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해서 일자리를 잃었고, 20대 초반 미혼모는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못 하고 파트타임으로만 일하고 있다.

이럴 때 B 지역에 사회적경제 대안으로 공공의료, 재교육, 돌봄 서비스가 들어가면 실업원인이 해소된다. 도시재생의 역할과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뭐냐? 도시재생은 쇠퇴지역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사회적경제는 시의적절하게 바통을 넘겨받아 그 대안들을 잘 꾸려나가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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