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올해는 한달살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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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올해는 한달살기 해볼까
  • 2019.01.05 12:42
  • by 최윤정

2019년의 첫 주말이다. 이루고 싶은 성취들, 노력할 관계들, 조금 더 성장하고픈 것들을 계획함과 동시에 올해는 어디를, 어떻게 다녀올까도 고민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어느 기업의 슬로건이 자주 회자될 만큼 익숙하다. ‘제주’와 ‘한 달’이란 단어가 들어간 표제의 책만도 10여 권이 된다. 제주를 서너 번쯤 여행한 사람들은 이제는 ‘일주일살기’, 아니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한달살기’를 꿈꾼다. 그런데 왜, 제주 한달살기일까.

 

제주는 가깝고도 멀다. 제주의 연간 관광객은 1400만 명. 서울 인구를 대략 1000만 명으로 본다면, 서울 인구의 1.4배 정도가 제주에 다녀간다. 또한, 서울-제주 항공구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노선이다. 2017년 총 64,991편이 운행되었고, 이는 하루 평균 178대, 제주공항의 운항시간(16시간)으로 따져보면 5분에 1대 꼴로 비행기가 오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가지만 제주는 심리적으로 멀다. 일단,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이고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여건이 그러하다. 또한, 자연, 문화, 언어가 육지와 사뭇 다르다. 제주는 겨우 1시간 비행이지만 일상에서 떠나오는 분리의 느낌을 그 어느 곳보다 확실하게 준다.

 

과거에는 신혼여행, 회갑과 같은 기념일에 제주를 방문했다. 요즘의 제주는 수학/졸업여행의 명소가 되었고, 젊은이들이 부모 없이 여행하는 첫 번째 여행지가 되었다. 대개 3, 4일 동안 관광지와 맛집을 점점이 찍는 여행들을 했지만, 이제는 기존과 다른 경험방식인 일주일/한달살기를 꿈꾼다. 해외 한달살기를 하기 전에, 시범적으로 제주에서 먼저 경험해보려고도 한다. 제주 한달살기는, 제주라는 장소의 특성과 여행방식의 변화까지 두루 반영된 현상이다.

 

살기의 여행을 위해선 우선 한 곳에 머무를 것을 권한다. 한 곳에서 한 달간 지내기가 너무 고통스럽다면, 적어도 일주일 단위로라도 머무르자. 살기의 여행은, 물 설고 낯선 곳에서 ‘먹고 놀고 소일하는’ 일상들을 해내는 것이다. 며칠에 한 번씩 숙소를 바꿀 태세가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살기가 아닌 숙소를 전전하는 장기 여행일 뿐이다.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숙소를 구하면 할인이 적용되는 숙소가 많으니 경제적 이점도 있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저 앉히고, 본인이 정한 지역의 ‘한 달 주민’이 되자.

 

한달살기는 일상적 여행이자 일상이 더 많은 시간이다. 단기 여행이라면 삼시 세끼를 매식하거나 빡빡한 일정으로 동서남북 무리한 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달살기는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보내서도 안 된다. 끼니, 산책, 독서 등 일상과 여행의 시간을 잘 버무리고, 현지인처럼 살지만 여행자의 관점도 유지하는 하이브리드한 특성이 있다.  

 

나는 제주 한달살기 동안 끼니를 해먹는 일이 특별했고, 그것이 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일장이나 지역 마트에서 여태껏 사본 적 없는 식재료를 사고, 요리방법을 궁리하고, 이리저리 해먹는 일련의 과정들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탈리아에 집을 얻어 체류하는 동안 매일 동네에서 조깅을 했다. 그는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나는 동네의 그런 정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저서 <먼 북소리>에 썼다. 나는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달살기 일상이었다고 본다.

 

제주 오일장에서 마감떨이로 사온 버섯, 고등어, 김치로 차린 밥상

 

한달살기 동안은 소일 삼아 평소 마음에 두었던 과제를 해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한 달 동안 올레길 10개 걷기, 책 10권 읽기, TV 시청 안하기, 채식주의자 되기, 요가 입문하기, 스쿠버다이빙 배우기 등. 그 동안 엄두 내지 못했던 생활 개선 과제나 현지에서 배우기 좋은 것들을 시도하면 한 달 동안 소일도 되고, 생활습관이 개선되고, 좋은 취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딱 한 달만’이라고 단서를 붙이면 훨씬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한 달 후에도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일단 한 달이라도 마음을 먹었고 몸에 습관을 들였으니까.

 

가파도에서 읽었던 소설책. 현지에서 도서관 대출카드를 만들면 좋다. 짐을 늘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곁에 둘 수 있다.

 

한 달을 어떤 식으로 살 지는 사실 각자의 목표와 계획에 따를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대단한 경험으로 꽉 채워 지내기도 쉽지 않다. 과도한 목표와 무리한 일정보단, 한 달을 한 곳에서, 현지인과 가까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새로운 환경에서 해봄직한 한 두 가지의 미션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한달살기는 의미와 재미가 있다. 살기와 여행 사이, 그 하이브리드한 시간을 올해는 만들어보자. 제주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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