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사회적경제 주도로 발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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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사회적경제 주도로 발전해야
[공정무역의 변화를 모색한다⑤] 김선화(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성공회대학교 협동조합경영학과 박사수료, 쿠피협동조합 조합원)
  • 2019.01.30 17:31
  • by 김선화(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한국에 공정무역이 시작된 지 17년이 흘렀다. 공정무역단체,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학교, 종교기관, 지방정부 등의 다양한 조직들과 사람들이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고 공정무역 소비, 인식확산, 교육을 촉진해왔다. 최근에는 인천시, 부천시, 서울시, 화성시가 공정무역마을이 되었고, 공정무역마을 운동을 시작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공정무역은 규모 면에서도 인식의 확산 측면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3년부터 공정무역을 연구해 왔던 쿠피협동조합의 공정무역 연구팀은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는 공정무역의 주요한 흐름을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한국 공정무역이 발전하기 위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 공정무역 주류화의 명과 암

최근에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유통업체 세인즈버리(Sainsbury’s)가 차 품목의 공정무역 인증을 포기하고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영국공정무역재단을 충격에 빠뜨렸다. 세인즈버리는 최초로 공정무역 인증 제품을 판매한 소매업체였으며, 공정무역 제품을 세계 최대로 많이 팔았던 곳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국제공정무역기구의 2017-2018 연차보고서에서 차 품목의 매출감소 요인 중의 하나로 다뤄질 정도로, 세인즈버리의 인증포기는 영국 공정무역 시장에 타격을 주었다.

 

(사진 출처- 세인즈버리 홈페이지)

 

1980년대 후반에 유럽을 중심으로 공정무역제품을 인증하는 이니셔티브가 등장하고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가 설립되면서 다국적기업, 대형유통업체, 일반 소매점에서도 공정무역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공정무역의 주류화라고 한다. 인증제도가 구축되기 전에는 개도국의 생산자 조직과 선진국의 비영리조직, 종교기관 등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제품을 판매했다. 공급사슬상의 모든 단계를 모니터링하는 제품 인증 제도가 도입되면서, 인증만 받는다면 어떤 조직이든 어디서든 판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인증을 통해 공정무역 방식으로 제품을 제조하고 유통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정무역마크가 도입되면서 인증을 받은 제품에 동일한 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공동마케팅을 가능케 했다. 소비자들은 마크를 통해 손쉽게 공정무역제품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다국적기업, 일반 유통기업의 참여로 공정무역의 규모는 급격히 성장했고, 그만큼 생산자 공동체에 지원되는 지원금도 늘어났다.    

한편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일반기업들이 공정무역제품의 제조 및 유통에 참여하면서 판매는 늘어났지만 공정무역과 관행무역의 경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지가 좋지 않은 기업들까지 공정무역제품을 판매하면서, 100% 공정무역제품만을 취급해온 공정무역단체들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공정무역제품에 포함되는 공정무역 원료의 비중을 낮추려는 시도도 있었다. 제3의 독립된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지 않고 기업 자체적으로 ‘공정하게 거래된’ 원료로 생산했다고 스스로 공표하지만 이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외부의 감사 없이 내부적으로 공급사슬이 구축되는 경우 공급사슬상에서 생산자들의 권한은 낮아지고 기업의 통제력은 높아지기 쉽다. 

어느 곳에서든 공정무역인증마크가 표시된 제품을 소비하기만 하면 소비자들은 빈곤퇴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수십년간 벌어진 일들을 보면 어떠한 조직이 행하는가에 따라 공정무역의 실천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마크가 부착된 공정무역제품이라고 해서 동질적으로 공정무역의 가치 추구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인증마크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알고 소비하기는 쉽지 않다. 누가 어떻게 생산하고 판매하든 마크가 부착된 상품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고, 동일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 공정무역은 운동이며 비즈니스

공정무역의 핵심은 생산자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공급사슬 상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는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고, 공동체 지원을 통해 공동체가 발전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은 운동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비즈니스의 영역이기도 하다. 공정무역제품은 시장 안에서 움직인다. 이 말은 아무리 제품에 담긴 가치가 좋아도 제품의 질과 적절한 가격이 동반되지 않으면 소비가 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2018년에 서울시민 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공정무역제품 구입시 고려사항으로 품질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그 뒤로 인증마크, 가격 등을 고려한다고 했다. 공정무역의 가치에 동의해도 품질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비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공정무역제품의 소비국과 생산국의 공정무역단체들은 생산자들의 제품을 소비국에서 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직접 현장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다양한 교육을 하기도 하고, 디자인에 대한 컨설팅을 하기도 하며, 설비를 지원하는 등 생산지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원이 부족한 개도국 생산자들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저 먼 나라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러한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산자들의 역량을 키워가면서 비즈니스를 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만큼 공정무역의 실천은 까다롭고 복잡하다.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공급사슬 상의 모든 단계에서 혁신을 이뤄가야 한다. 생산자들에게 적절한 교육과 기술 등의 지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자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뿐 아니라 소비국의 공정무역단체들은 공동으로 원료를 수급하거나 공동 물류 등을 통해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사회적경제를 중심으로 공정무역이 성장 발전해야 

앞서 언급했듯이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조직들이 동일한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공정무역 가치사슬을 연구하는 영국의 경영학자 도허티와 그의 동료들은 2012년 논문에서 공정무역단체와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공정무역을 실천할 때 공정무역의 원칙과 가치의 훼손을 최소화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은 공정무역이 주류화되지 않았다. 2조 5천억원의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영국처럼 어디서든 쉽게 공정무역제품을 만날 수 없다. 이제 공정무역 시장을 형성해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공정무역을 확산시켜 나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 대안 중에 하나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청년 창업가들이 공정무역에 더 많이 참여 하는 것이다. 이윤보다는 사람을 우선 생각하고 공정무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에 의한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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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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