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뭐하는 데냐④] 이름없는 건축사무소 '무명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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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뭐하는 데냐④] 이름없는 건축사무소 '무명건축'
상도동 매력탐구 시간 - 상도동 주민이 말하는 상도동
  • 2019.02.19 20:55
  • by 정설경(재밌는 동네도서관을 구상하는 상도동 주민)
상도동에 ‘데뷔’한지 7년차. 초등학생 아이의 방과후 마을학교를 위해 순전히 ‘맹모삼천지커(뮤니티)’ 욕심으로 상도동에 잠입했는데 상도동에 중독된 주민. 무엇이 이토록 상도동에 빠지게 하는지 네 번째 이야기: 이름없는건축의 김소장에게 듣는 오래된 집 이야기 <글쓴이 주> 

 

고양이가 인도한 낡은집... 파란천막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도3동 사자암 마을버스 종점 인근엔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다. 오며가는 길목이라 낯익은듯 낯선 풍경 하나가 자리했다. 파란 천막으로 둘러 쌓인 담벼락으로 고양이들이 들락거린다. 누가 살지 않은 것 같은데 파란 천막은 왜 둘러져 있는지,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고 싶은데 쌩하니 천막으로 들어가는 쌩콩한 녀석들.

 

공사중에도 고양이들은 들락거리는 특혜

 

그러던 어느날 천막이 걷히고 빨간 담이 등장했다. 담 가운데엔 네모난 구멍이 나 있다. 구멍 사이로 고양이들은 익숙하게 들락거렸고, 나그네는 얼굴을 드밀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시멘트계단이 담으로 이어져 있고 마당엔 작업대가 서 있다. 고양이들은 그렇게 뻔질나게 들락거리는데 밥이나 얻어 먹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궁금함이 목까지 찬 어느날 환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 앞으로 길냥이 밥상이 차려져 있다. 그제서야 주저없이 냉큼 들어가 말을 걸었다. 아리따운 청년이 목수행색으로 반겨준다. 동네고양이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교환했다. 고양이와 친구하는 이 사람을 ‘청년목수’로 애칭해 놓고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자신의 명함이 붙어 있는 대문 한켠을 보여 주었다. ‘무명건축’의 소장으로 적혀 있었다.

 

동네고양이통로가 열리다

 

오래된 동네의 허름한 집이 ‘쉐어오피스’라니

고양이 안부를 물으며 얘기를 텄지만 뭣에 쓰려고 여기를 고치는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다. 궁금함을 물어오는 주민들이 많을텐데 또박또박, 자상하게 대답해 주는 말을 거는 횟수가 잦아졌다. "아는 사람의 집인데요. 방치되어 있어서 제가 고쳐 쓰려고요. 건축 설계를 하는 사무소로 사용할 거고, 여분의 방들은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과 쉐어 하려고요." 낡고 오래된 집을 고치고, 나눠 쓸 준비를 차곡차곡 했다. 이곳으로 사업장을 이전하고 직접 손때 묻혀 공사한 이곳은 ‘이름없는건축’의 사무소이자 1호 공유사무실이다. 더 이상 쓰임이 없을 것 같던 오래된 집은 건축가의 눈썰미로 쓰임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름없는 건축사무소의 김소장


기본적인 도면이 없던 시절 건물들의 도면을 그려주는 취미를 살려, 이 집을 실측해 보고 도면을 그려봤다.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하면서 마음에 이끌려 작업장 삼았다. 동네고양이들의 터전이었을텐데 건축가는 미안함을 안고 2017년 여름부터 철거하고 수리에 들어갔다. 2018년 가을, 고양이이야기로 수다를 나누는 주민으로 알아갔다. 2019년, 드디어 이름없는건축사무소와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입주한 두 명의 작가들, 그리고 김소장 셋이서 공간을 나눠 쓰는 동료가 되었다.

애초 사회초년생들과 사무실을 나눠 쓸 요량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청년창업자 또는 사회초년생을 지원하는 소위 “인큐베이팅” 지원 사업들이 많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계획을 조금 바꿨다. 서울문화재단에는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빌려주는 “레지던시”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년에 한번씩 지원과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장한 작가들은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마땅한 작업공간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과 이 집을 공유하고 싶었다. 최소한의 사무공간과 가재도구, 작업실을 갖춘 아주 작은 공간이다. 낡은 대문으론 작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담벼락의 작은 구멍으론 동네고양이들이 드나드는 동화같은 공간이 공존한다.

 

(왼쪽)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자리, (오른쪽) 이름 없는 건축 사무소가 빚은 하늘


공간 재생은 물론 복덕방 미션까지

사무소가 위치한 주변은 새로운 택지로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주민들도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불투명하니 빈 주택부터 손질해서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 쓸 욕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방치된 상가와 주택의 단칸방들을 보수해서 개별 공간으로 나누고, 마을 안에서 욕실과 주방을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무명건축가는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머물 수 있도록 복덕방 역할도 마다않고 있다. 빈 주택의 이웃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빈 방의 세를 놓고 싶어도 수리할 사정이 되지 않아 마냥 비워있던 집을 자가부담을 들이지 않고 세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방치된 빈 방을 날것으로 내어주는 대신 보증금을 받지 않고 세입자가 고쳐서 살 수 있도록 계약기간 만큼의 월세 50%를 선급으로 받아서 공사비로 지원한다. 그리고 세입자는 계약된 사용 기간 중 월세를 50%만 지불하면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집을 고치고 들어오면 집은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되고 주인은 추가되는 별도의 비용부담 없이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식을 실험해 보려고 한다. 

집을 ‘내놓으라는’ 야심가득한 청년의 제안에 주민들은 어떤 반응일까? 쉽지 않은 말걸기였을텐데 이미 1호로 고쳐 놓은 증거가 있어 말하기는 한결 쉬워졌다. 김소장은 이름없는건축 집들이로 떡을 돌렸다. 한지에 떡을 쌓아 이웃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미소 품은 떡을 받아든 주민들은 얼마나 행복한 날이었을까.

 

떡으로 인사하며 소통하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쓰는 실험을 했는데 인근의 비워있는 상가가 이름없는건축의 2호가 될 것 같다. 함께 작업해 본 적이 있는 타일공이 공간의 주인이어서 말하기 쉬워졌고, 공간의 컨셉에 대한 공감대도 확보해 놓은 단계다. 상가를 개조해서 타일교습소를 운영해 보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공간도 계획하고 싶다. 낡은 곳을 고쳐가며 쓸모있는 공간으로 채워가는 것, 생각만 해도 신나는 작당이다.

 

재능으로 고양이와 공존하는 상상

고양이를 전혀 몰랐던 ‘이름없는건축가’는 이곳의 원주민이었을 동네고양이들을 돌보며 뜻하지 않게 고양이를 알아가고 있다. 원주민 고양이들이 쫓겨나지 않고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을 생각하고 있다. 고양이통로와 고양이밥상을 제공하고 있고, ‘추운 겨울 조금의 온기라도 놓치지 말라고 구옥에 딸린 보일러실을 보수해서 고양이들이 머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천막을 쳐서 고양이들이 숨고 싶은 고양이골목을 만들면 어떨까’, ‘아픈고양이들이 머물 고양이방이 있으면 그것도 좋겠다’. 고양이들에게 베풀 자상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찼다. 작은 공간을 더 쓸모있게 설계하고 고치고, 함께 꾸려갈 동무가 있다면 기꺼이 재능을 던져 반려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동네로 가꿔 보고 싶다.

 

(왼쪽) 어쩌면 고양이가 먼저 머물렀을 공간, (오른쪽) 이름없는 건축사무소의 동네 고양이 밥상


오래된 시간을 담은 고치는 이야기

셋방살이 시절을 반영했던 주택이라 이 작은 집엔 여러 식구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있다. 여러 채로 나눠져 있는 걸 보면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살았고, 외지사람을 위한 쪽방도 있었다. 화장실은 한칸이지만 방마다 다락과 수도시설이 구비된 걸 보면, 그 시절을 품은 작은 집이었다. 당시 화장실은 담벼락 쪽에 있었고, 그 지붕이 장독대였다. 화장실은 철거했지만 장독대로 올라가던 계단은 고양이들이 들락거리는 통로로 남겨두었다. 

 

(왼쪽) 장독대 계단은 고양이 계단으로, (오른쪽) 대문지붕도 고양이에겐 쓸모있는 곳

 

무명건축가는 건물을 고치는데 머물지 않고 집에 얽힌 이야기를 수집했다. 낡아빠진 작은집이 공유하는 작업실로 바뀌고, 고양이들이 드나드는 담벼락을 보고 주민은 말을 걸었다. 집이 변해가는 걸 보고 이웃이 말을 걸고, 다양한 사람들은 사무실 용도로 들락거릴 것이다. 공유사무실이자 작업장으로, 그리고 주민들이 말을 걸며 커뮤니티가 저절로 살아나고 있다. 우리가 꿈꿨던 동네 커뮤니티가 작고 오래된 건축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도동의 오래된 곳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커뮤니티의 실험. 무명건축가가 빚어내는 살금살금 건축은 어쩌면 무명으로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수상쩍은 예감이 든다. 

#상도동_무명건축 #상도동_쉐어오피스 #상도동_동네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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