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 입점한 '아프리카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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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입점한 '아프리카의 맛'
[아프리카 소셜벤처 기행 ①] 아프리카 토종 기업 필리필리 오일을 생산하는 '시나 제라드'
  • 2019.02.26 16:28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필자는 외식업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음식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해서 다양한 음식을 많이 접했고, 맛을 찾아 탐방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지역이나 그 나라 특유의 맛을 구분하게 될 때가 있다. 향토 음식에 반복적으로 쓰이는 조미료나 향신료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 음식은 된장이나 고추장 등 장류를 꼽을 수 있을 것이고, 인도는 마살라, 지중해 국가들은 올리브유, 이런 식이다. (아, 얕은 지식이 뽀록(?)나고 있다.) 아프리카 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프리카 음식의 특징을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경험 안에서는 '필리필리 pilipili'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필리필리'를 처음 접한 것을 케냐였다. 케냐의 언어이자 동아프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스와힐리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고추가 스와힐리어로 '필리필리'라고 했다. 세상에 고추를 이런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다니! 그 단어를 배우고 나서 시장을 가자마자 '필리필리'를 찾았다. 케냐의 필리필리는 이름만큼 생긴 것도 귀여웠다. 하지만 매운 향이 너무 강해 선뜻 사지는 못했다. 이후 음식으로 접했는데, 아주 적은 양으로도 극강의 매운 맛을 자랑하는 독한 고추였다. 이름과 외모에 속을 일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고추 '필리필리'. 피망이나 파프리카가 쪼그라든 것 같은 모양이다. (출처: https://www.jamiiforums.com/threads/pili-pili-mbuzi.1515337/)

 

그 후 카메룬에서 다시 필리필리(프랑스어권에서는 '피망'이라고 부르고, 영어권에서는 ‘페페’라고 부른다. 카메룬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양국어 국가이다.)를 접했는데, 이 곳에서는 훨씬 보편적으로 쓰이는 식재료였다. 거의 모든 음식에 필리필리 소스가 곁들여졌고, 필리필리를 쓰는 요리도 매우 다양했다. 한국에서 김치가 맛있는 식당에 엄지를 들어주는 것처럼, 카메룬에서는 필리필리 소스가 맛있는 식당에 엄지를 치켜 올린다. 이후 남아공에 여행 가서 유명 현지 음식이 '페리페리(필리필리) 치킨'인 것을 보고 '아프리카의 맛은 필리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동, 서, 남쪽을 확인했으면 어느정도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아마존'에 입점한 아프리카 토종 기업
이 아프리카 고추, 필리필리를 다른 나라에서도 접할 수 있을까?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아프리카의 맛을 근접하게 재현해낼 수 있다. 다행히도 필리필리의 맛을 담은 오일이 시중에 나와있다. 놀랍게도 아프리카 각 국가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심지어 아마존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오일의 생산지가 르완다라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이 제조업에 취약하다. 르완다는 내륙 국가인데다 산지가 많아 특히 제조와 유통에 어려운 환경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필리필리 오일이 전세계로 수출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카방가'는 르완다어로 ‘작은 비밀’이라는 뜻이다. 음식에 몇 방울만 뿌려도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아카방가'라고 하는 이름의 이 필리필리 오일을 생산하는 회사는 '시나 제라드'다. 회사명은 창업자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다. 창업자 시나씨는 1983년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 도넛을 튀기다가 점차 사업이 확장되어 필리필리 오일, 케첩, 주스, 와인, 꿀 등 다양한 식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르완다에서는 손꼽히는 자수성가형 기업가이자,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자산가이기도 하다.

 

시나 제라드의 다양한 제품을 소개 중인 직원 모습

 

농사에서 제품 생산까지 직접… 수익은 지역에 환원
'시나 제라드' 회사와 공장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한시간 여 떨어진 니랑가라마에있는데, 회사 직원만 500여 명, 거래하는 농부가 1000명이 넘는다. 이 회사가 한 지역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완다 시장에서의 입지도 탄탄하고 활발하게 수출도 하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R&D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농장 부지의 일부는 계속적으로 실험 작물을 재배하고 있고, 매년 신상품을 개발해서 소개하고 있다.

 

창업자 시나 자신이 초등학교 학력이기 때문에, 그는 교육에 굉장한 열의를 가지고 있다. 재단을 만들어 산골 마을에 초등학교과 중고등학교, 기숙사를 지었고,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의 학생들은 학비를 면제해준다. 니랑가라마 지역은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 산촌이다. 시나 제라드에서 이 곳을 개발하기 전에는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이런 마을에 농장과 목장, 공장, 상가를 비롯해 학교까지 지었으니, 마을에서 시나 제라드씨가 존경과 추앙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시나 제라드에서 세운 (왼쪽) 학교 (오른쪽) 신축 중인 초등학교와 교회의 모습

 

시나 제라드의 생산시설 (왼쪽) 빵 공장 (오른쪽) 주스 공장

 

아프리카의 소셜벤처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떤 회사를 먼저 소개할까 고민했다. '시나 제라드'를 먼저 고른 이유는, 아프리카에도 꾸준히 기업을 키우며 영역을 만들어온 기업가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시나 제라드'는 소셜벤처라기 보다는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하는 영리기업이다. 하지만 '메이드 인 르완다'를 세계에 알리는 그의 모습이, 젊은 아프리카의 창업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과거 개발원조가 서구에서 아프리카로 전달되는 일방적인 방향이었다면, 사회적경제나 비즈니스는 훨씬 다양한 화살표가 복잡하게 존재한다. 여전히 사회적기업을 소개하고 소셜 임팩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서구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기업가정신과 시장의 역동성은 타인의 눈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메이드 인 아프리카'가 영화 블랜펜서의 ‘와칸다’처럼 자부심과 긍지의 이름이 되길 기대한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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