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또 조화롭게 - 르완다의 '멜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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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음식 기행③] 르완다 주변국 음식이 잘 어울어진 '아프리카 뷔페식-멜랑제'
  • 2019.04.04 14:35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르완다를 다녀온 사람들이 자꾸 곁을 스쳤다. 르완다 이야기가 귓가를 스치다가, 맴돌다가, 쌓여갔다. 더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휴가를 잡아버렸다. 티켓을 준비하고는 긴 시간 설레며 행복했다. 너무 큰 기대가 여행을 망칠까 두렵기도 했지만, 어마어마한 환상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내게 주어진 작은 기쁨을 누리며 여행을 기다렸다.

 

르완다의 첫 인상은 ‘깨끗함’이었다. 2010년대 초반에 이미 일회용 비닐봉투를 법적으로 금지한 나라, 쓰레기가 없는 거리를 위해 충분한 인력의 청소부를 고용한 나라다. 그런 나라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다. 놀랍게도. 공항에서 이어지는 대로는 시내에 이르자 간간히 막히긴 했지만 더럽다거나 무질서하지 않았다. 일부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첫날의 의심은, 다섯째 날쯤 되어서야 완전히 풀렸다. 내 짧은 경험 안에서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수도가 가장 오염된 데다가 위험한데,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그런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르완다는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다. 아프리카 대륙 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를 비교해도 이정도로 청결과 보안을 지키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키갈리를 깨끗하게(Keep Kigali Clean)라는 캠페인 문구가 적힌 거리의 모습 (사진출처-enca)

 

르완다 첫 방문지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기념관을 택했다. 르완다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슬픈 역사이기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무르며 단지 보이는 모습에만 치중하지 않기 위해 이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의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백인 단체 관람객들을 포함해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붐비지 않을 정도로 있었는데 때때로 흐느끼거나 먹먹함에 숨을 고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생존자의 생생한 인터뷰 뿐 아니라 희생자들의 사진, 유골, 소지품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묵직한 감정들이 그대로 치고 올라와서 제어하기 어려웠다. 제노사이드를 그린 영화 '호텔 르완다'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기념관의 끝에 이르러서는 온 힘이 다 빠져나간 듯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불과 25년 전의 현실. 현재의 르완다 사람들은 동족학살의 기억을 그대로 떠안고 살아간다. 기념관의 마지막 관에서는 르완다 내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설명하는데, 생존자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제노사이드에 대해 가르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제노사이드를 '평화' 교육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다. 아픈 과거는 현재의 단합과 안정을 위한 당위가 된다. 정부에서 꾸며놓은 전시관이라 교훈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도 있을 테지만.

 

여행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제노사이드 기념관을 첫 코스로 택했고, 충분히 도움이 되었지만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다. 때때로 내가 너무 감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기념관을 다녀온 직후에는 자꾸 동정심을 담아 사람을 보게 되어서 그런 나 자신을 돌려 세우느라 애를 먹었다. 다시 객관적인 태도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또 다른 역사적 장소인 ‘밀콜린스 호텔’ 방문이었다. 밀콜린스 호텔은 ‘호텔 르완다’의 실제 배경이 된 호텔로, 여전히 고급 호텔로써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입구의 제노사이드 기념비를 지날 때만해도 숙연했으나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마음이 금세 두둥실 떠올랐다. 잘 꾸며진 호텔 로비와 멋진 수영장, 세련된 레스토랑은 르완다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르완다는 아픈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전진을 위해 과거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기억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또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그것이 내가 느낀 르완다의 모습이었다. 호텔에서의 음식은 훌륭했다. 나는 구운 꼬치 요리인 ‘브로쉐트’를 택했다. ‘브로쉐트’는 불어로 ‘막대, 꼬치’라는 뜻이다. 르완다는 벨기에의 식민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곳곳에 불어 단어가 많이 남아있다. 음식을 일컫는 말에도 불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뷔페를 뜻하는 ‘멜랑제’가 그렇다. ‘멜랑제’는 불어로 ‘섞다’라는 뜻으로, 여러 개의 음식을 한꺼번에 먹을 때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밀콜린스 호텔의 브로쉐트 ⓒ엄소희

 

사실 뷔페식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호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르완다는 다른 나라에 비해 뷔페식이 훨씬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모든 식당의 뷔페식이 동일한 메뉴를 취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밥을 포함한 탄수화물류, 이에 곁들일 수 있는 고기 스튜와 현지 토속 음식 소스류, 과일과 샐러드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약간 규모가 큰 식당에 가면 인근 국가의 요리까지 모두 섭렵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케냐의 우갈리(옥수수 가루를 개어서 익힌 반죽)나 우간다의 마토케(플랜테인 바나나를 끓인 것)와 같은 대표 음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후 르완다 현지 음식을 하는 식당을 몇군데 더 들러 보았는데, 인근 국가 음식을 함께 다루는 곳이 많았다. ‘르완다 음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아프리카 음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가정식을 체험하러 간 곳에서 ‘이 음식이 르완다 전통음식인가요?’하고 묻자, ‘따져보자면 이건 콩고 음식이고, 저건 우간다 음식이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오랫동안 이렇게 먹었으니 르완다 음식이기도 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면을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르완다의 강점은 무엇이든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르완다는 땅덩이도 작고, 인구도 많은 편이 아니며 특별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특유의 유연성이 있다. 르완다의 공용어는 널리 쓰이는 키냐르완다어 외에 영어와 스와힐리어까지 세가지이다. 여기에 지난 벨기에 식민 역사 때문에 중장년층 이상은 불어를 자연스럽게 쓴다. 다분히 의도적인 ‘멜랑제’다.

 

키자미테이블의 '멜랑제' ⓒ엄소희

 

르완다 정부는 최근 ‘동아프리카의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로서 어쩌면 최선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정부 주도의 결정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이미 르완다는 주변 국가들과 충분히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며 그 기반을 쌓아왔다. 조화로운 그들의 밥상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앞으로 동아프리카의 연결점이 될 그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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