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 겪고 내 삶은 더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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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 겪고 내 삶은 더 치열해졌다
[기고] 보이스피싱 피해자 대표 힐러리 김(미국 변호사)
  • 2017.09.06 16:44
  • by 라이프인

 나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미국에서 보내고 30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마흔 살 이후 회사를 쉬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말로만 듣고 불안하게 여기던 인터넷 뱅킹에 가입했다. 미국과는 다른 뱅킹 환경에서 남들 다하는 인터넷 뱅킹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단순한 회사원 생활과는 달리 다양한 일을 하게 되다 보니 돈을 받고 보낼 일들이 많아져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2년에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 잠시 빈털터리가 되어 아파트 담보 대출 이자도 일주일 정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 후 집을 팔고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보이스 피싱 피해의 직접적 영향은 아니지만, 사고를 당한 후 금융거래에서 신용상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도 무슨 이유에선가 신용카드 관련으로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마 신용카드는 비밀번호 등을 내가 설정해 놓지 않아서 가르쳐 줄 것도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은행 계좌의 경우 아이디와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 등을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했는데도 원격으로 새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계좌를 털어간 것, 그런데도 은행이 IP의 이상징후를 무시하더라도, 인터넷 뱅킹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새로 설정하는데도 비대면으로 그냥 승인한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부산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서울에서 은행의 과실을 짚어 손해 배상을 받기 위한 소송이 진행되었고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업에 관련된 일로 다른 참가자처럼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거나 재판 방청을 하지 못하다가 2016년 뒤늦게 재판이 어이없이 패소로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송 패소로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은 소송 비용까지 물어야 할 상황이 됐다. 하나은행에서 소송비용 청구가 곧 들어왔고 소송비용을 일주일 내에 안 내면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통고를 받았다. 이는 또다시 마음의 상처가 되었고 답답한 심정에 금융감독원이 제대로 감독을 안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국민권익위원회와 몇몇 부처에 민원과 공익신고를 했다.

얼마 후 하나은행 소비자보호부에서 전화가 왔다. 소송비용을 면제해줄테니 민원을 취하해달라는 내용이었고 당시 통화내용을 녹취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소송비용을 면제받았긴 했지만, 이 또한 한심한 상황이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소송비용을 그냥 낼 거라는 것이다.

소송의 경우 한국에서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이길 방법이 없어 미국에서 소송을 해보자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5인으로 시작해 30명 정도가 모였다. 이 과정도 참 힘들었는데 그 이후가 더 어려웠다. 몇십 명의 인원으로는 미국 로펌에서 맡아주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접촉해 본 한 두 미국 로펌에서도 승소가 어렵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소송 관할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고 해도, 기판력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소송 시 한국과 달리 착수금을 받지 않고 성공 보수를 받는다. 또한, 승소자가 패소자에게 변호사 비용 청구를 하는 관례도 헌법적 권리침해로 폐기된 지 오래다. (악의적이고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법적 쟁점이 없는 소송은 제외)

먼저 언론에 호소해야 미국소송 참가자 수를 더 늘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수십 차례 기자들에게 연락했다. 드디어 동아일보 기자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 후 라이프인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들었다. 라이프인 공정경 기자는 부산까지 출장을 와서 이 얘기를 들어 줬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달에 라이프인에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첫 번째 기사가 나왔다.
(관련기사:'카카오뱅크'가 뜨는 이유를 알아봤더니? - 보이스피싱, 왜 피해자만 계속 당하나?)

쟁점은 길게 말할 필요 없다. 너무나 이상한 거래, 중국 IP로 접속한 경우뿐 아니라 거래가 전혀 없던 여러 사람에게 몇 초 사이에 연속적으로 잔액이 나누어져 완전히 사라지는 식의 거래를 왜 은행은 잠시라도 거래를 보류시켜놓고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나? 이다. 어떤 변호사는 인터넷 뱅킹을 한창 프로모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뱅킹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은행들은 인터넷 거래 수수료를 벌어들이려 하기에 이에 제동을 걸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돈벌이만 아는 이런 은행의 태도가 왜 중과실이 아닌지 의문이고, 유독 우리나라만 사고 발생 시 은행이 책임지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인터넷 뱅킹 자체도 개인이 원한다고 우리나라처럼 다 허용하지도 않고, 사고가 생기면 카드회사나 금융기관이 우선으로 책임이 있어서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비공식적이지만 최근 모 보험 회사가 보이스 피싱에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험 상품까지 팔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기막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모든 범죄를 수사나 법 집행 기관,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 있는 기관 (은행) 등은 예방의 노력을 하지 않고 보험이나 들면 해결될 일을 뭘 그러냐는 식으로 또 돈벌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보험은 사회 상규와 공공 정책에 반하는 계약으로 무효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도박에 관한 계약, 범죄를 교사하는 계약이 무효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보험은 보이스 피싱이 많이 일어날수록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지고 많이 가입할 테니 말이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고시 금융회사 책임을 강화하는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

2016년 11월 이종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 했고 2017년 2월 상정됐다. 지금도 우리는 작은 소망이 모여 법 개정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이 상태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 한다. 기존의 피해자 보호는 얼마나 될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이러한 피해를 통해 사회를 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민감해지게 된 점이다. 그래서 공공정책학 박사학위를 따려는 노력도 시작했고, 개인의 피해로 접고 말 일이 아닌 것은 사회적으로 문을 두드려야 되고, 작은 움직임이 커져서 변화를 끌어낼 거라는 확신하게 되었으니 내 삶도 더 치열해지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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