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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거리를 지키고 싶었어요"

기사승인 2019.05.16  17: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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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 민간 주도 도시재생 '개항로 프로젝트' : 이창길 대표 인터뷰 ①] 슬럼화 된 동인천에 뉴트로 감성을 입히다

이창길 대표

인천 최고의 번화가에서 슬럼으로 쇠퇴한 경동. 인적이 드물고 낡은 건물이 즐비한 거리. 곳곳이 빈 집인 좁은 골목길을 꼬불꼬불 따라 걷다보니 '개항로 프로젝트' 본부가 나타났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장사가 될까 의아할 정도다.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개항로 프로젝트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간단한 인테리어인데 레트로와 뉴트로 감성이 물씬 풍긴다. 분명히 한참 유행이 지난 물건들인데 멋스럽다.

이 사무실을 손수 꾸몄다는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41)는 "대부분 신흥동 등 재개발지역에서 주워온 것들"이라며 "전등은 20년 넘게 안 팔리고 있던 것을 헐값에 '득템'한 것이다"며 웃었다.
 

80년대 유행 스타일의 전등들. 이창길 대표는 "안팔리다 보니 빈티지가 된 것이다"며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것들을 싸게 구입했다"며 웃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개항로(인천 중구 경동 일대)를 보존하기 위해 작년부터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순수 민간단체의 활동명. 유동인구 '제로'에 가까웠던 이 곳에 빈 건물 등을 개조해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음식점 등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주변의 노포(오래된 가게)를 소개하고 기록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원도심 도시재생 시민공모'에 응모해 노포 전시회를 함께 한 것 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도 없다.

어떻게 민간인들이 도시재생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더구나 이 대표는 디자인이나 건축 전공자도 아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공간경영 박사 과정을 밟다가 귀국했다. 이런 궁금증들을 담아 이 대표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 관의 도움 없이 민간 주도로 도시재생을 진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할 생각을 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이런 일들을 계속 해오고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귤 창고를 집으로 개조한 것도 제가 최초이거나, 처음 작업자 중 하나일걸요. 이화여대 부근에 노숙자들이 '달방'으로 이용하는 여인숙을 호텔로 개조하기도 했고, 이런 작업들을 워낙 좋아해요.

- 과거 활동들은 도시재생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았습니다. 집 한 채 건물 한 채였죠. 그런데 이번에는 1km에 달하는 거리가 작업 대상이라는 점에서 민간인이 엄두 내기 어려운 작업 아닌가 싶어서요.

맞아요. 예전 작업들과 다르죠. 그럼에도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일단 인천을 선택한 이유는 인천 인구가 많아서예요. 여수 순천 같은 지방도시는 인구가 많아야 20만이죠. 그러니 관광객이 오면 이슈가 되요. 그런데 인천 인구는 300만입니다. 더구나 바로 주변에 인구 1000만 도시(서울)가 있어요. 그런데 이 주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가 막힐 정도로 아무것도 없어요. 공연장 갤러리는 물론 근사한 레스토랑 하나 변변한 곳이 없어요. 문화 인프라가 척박하죠.

또 런던 리버플 뉴욕 요코하마 항저우 같은 항구 도시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개항하면서 이들 도시 주변에는 모두 공장들이 들어섰다가 갤러리 아트센터 등으로 변모되어 갔죠. 최근 폐쇄되어 있던 제8부두가 열렸어요. 동인천도 이제부터 변신할 겁니다.

다음으로 거리를 택한 이유는 여기 도로 폭이 좁아서예요. 그러면 차량보다는 사람 중심이 되죠. 무단횡단을 해도 차들이 클락션을 누르지 않아요. 보행자들도 이쪽거리와 저쪽거리 모두 이용할 수 있고요.

골목도 많죠.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은 호기심에서라도 걷게 되요. 확장성이 있고, 우연성도 있고, 재밌죠.
 

국내 최초의 실내극장인 애관극장.

내가 찍은 곳은 애관극장부터 배다리 사거리까지예요. 어마어마한 보물창고죠. 애관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이예요. 그 옆에 답동성당이 있고 명동성당보다 오래됐죠, 내리 교회는 우리나라 최초 개신교예요. 이 건물 옆 건물이 인천 최초 백화점 건물예요. 상상해보세요. 여기가 어떤 곳이었을지.

이 길은 배가 들어오면 임금님에게 진상할 물건을 보내던 길이었어요. 배다리는 '배로 만든 다리'라는 뜻인데 진상품이 항구로 들어오면 개항로를 지나 배다리를 건너 한양으로 보내졌죠. 안쪽으로 들어가면 권련(기생 교습소)이 있고요. 3대 권련이 개성 한양 인천인데 자료를 보면 '개경보다 인천이 낫다'라고 되어 있어요. 근방에 전과 꼬치집 들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하시던 찬모나 기생 분들이 음식점을 차리신 거예요. 당시 일본인들이 기생과 즐기던 잔치 음식을 엿볼 수 있죠.

그 뿐인가요. 1883년(제물포 개항) 이후 일본식 가옥부터 6~70년대 한옥과 성냥공장까지 골고루 남아있어요. 여기는 시대별로 봐야해요. 병원 얘기만도 한참 할 수 있어요. 최초 길병원도 여기 있었고 최초 기독병원도 근방에 있죠. 모든 문물이 들어오는 곳, 서울보다 더 잘나갔던 곳이었어요.
 

일본식 목조건물(가운데). 합벽(건물과 건물 사이에 틈이 없는 것)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군데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고요. 처음 브랜드 청바지를 산 곳이기도 하고,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 빽판(해적판)을 산 곳도 여기죠. 서울로 대학가서 만난 여자친구를 애관극장에 데려왔다가 망신당한 곳도 여기고요. 자리 맡아야하니 빨리 가자고 하니 빵 터지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극장은 지정좌석제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하하.

- 그런데 여기 재개발 지역 아닌가요?

맞아요. 그래서 들어왔죠. 여기는 재개발 되면 안 되는 곳이니까요. 재개발을 하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는데 경제적인 가치로 따져도 여기는 안돼요. 여기 엄청난 곳들이 많아요. 여기를 싹 밀고 아파트가 올라가면 인천은 가진 게 없는 도시가 되요. 또 다시 100년이 흘러야 뭐가 생기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상권을 살리고 문화를 불어넣어서 재개발을 해제시키자고 생각한 것이죠. 여기가 활성화되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아파트 안 지어도 되겠네' 이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 그동안 재개발 되지 않고 다행히 지켜졌네요. 주민들과 마찰은 없으셨나요?

어찌보면 지킨게 아니라 지켜진거죠. 인천에 개발 안 된 땅이 아직도 많은데다가, 송도나 청라 등 간척지까지 개발되니 이쪽은 버려져 있었던 거죠. 정말 다행예요.

주민들과 딱히 마찰은 없었지만 이상한 소문은 정말 많이 듣고 있어요. 70세 넘은 부동산 업자라더라, 인천 중구청에 스카웃 된 민간인이라더라 등등. 신경 안쓰려고 해요.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요. 고맙다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 동료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보물창고'라고 해도 정주인구도 적고 유동인구는 아예 '제로'에 가까운 이 곳에 각자 건물을 사서 가게를 오픈하자는 계획에 다들 선뜻 동의했나요?

멤버가 20여명 되는데, 과거에 같이 작업한 친구들이예요. 생각도 비슷하고. 아주 유연하고 느슨해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조직은 아녜요. 디자이너 건축가 등등 이력도 다양하고요. 하지만 건물을 사고 가게를 열어 이 거리를 살려내자는 취지에는 모두 합의했죠.

그리고 이 프로젝트 시작 당시만 해도 여기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쌌어요. 서울에서 가게를 차리고 보증금에 월세 대출이자를 낼 돈이면 여기서는 건물을 살 수 있더라고요. 그뿐인가요 서울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작업들을 여기서는 할 수 있어요.

카페 일광전구 라이트 하우스를 예로 들까요. 산부인과와 원장 사택을 카페로 개조한 것인데요. 인천에 갤러리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2~3층 일부를 갤러리로 꾸몄죠. 마지막으로 백열전구를 만들던 공장이 폐업할 때 받아두었던 제조기계도 전시해 놨고요. 사택 2층 베란다에서는 지난주 공연도 열었어요. 서울에서는 이런 작업 절대 못해요. 임대료가 얼마인데요.

지금은 단종된 백열전구를 제조하던 기계.


- 각자 건물은 각자 꾸민 것인가요?

네. 개항로를 살리고 이 거리에 문화를 불어넣자라는 취지에 동의한 것 외에 건물구입이나 인테리어 등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거죠. 다만 근사한 레스토랑, 캐주얼한 음식점, 갤러리, 카페 등등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5월에 오픈 예정인 곳만 세 곳이고, 하반기까지 계속 새로운 가게가 들어설 예정예요. 여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 팀 아닌 다른 분들도 오셔서 오픈하시기 때문에 가게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다고 연락도 많이 오고요. 취지가 맞는다면 누구든 함께 하는 방향이 맞다 싶어요.

- 아무리 가격이 싸도 지난 10년간 죽어 있던 거리에 건물을 산 것은 대담한 결정인 것 같아요. 시민 자산 프로젝트 진행은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우리 팀이 다 또래들이예요. 무슨 돈이 있겠어요. 가는 데마다 쫓겨나는 거죠. 이대 앞에서 여인숙 리모델링했다고 했죠. 지금 그 자리에 아파트 있어요. 그때 보증금도 못 받고 쫓겨날 뻔 했어요. 난생 처음 변호사도 선임했고요. 또 쫓겨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시민 자산화 힘들어요. 영국에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펍(Pub)에 모여 즐기죠.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같은 곳에 다녀요. 그런 곳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니 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펍을 사고 또 공동으로 운영하게 되면서 이걸 뭐라고 부르지? 시민자산이라고 할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민자산화 움직임이 생겨난거죠. 영국 사람들은 그런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거예요.

한국은 달라요. 나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난데없이 누가 '의미 있는 건물이니 보존하자'며 돈을 내라고 한다면 누가 돈을 낼까요?

나라면 없어질 경우 선뜻 돈을 낼 건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학림다방 정도? 그곳에 추억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선뜻 돈을 내고 싶은 건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이 곳이 보물인줄 몰라요. 그래서 다행히 지켜졌지만 이 곳을 지켜내기 위해 돈을 내진 않겠죠. 그래서 우리가 사야 했어요.

워낙 이 곳이 매력 있는 곳이니 우리가 함께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시작한 거죠. 물론 저도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어요. 밤에 잠도 잘 못자고요. 하하.
 

산부인과를 개조한 라이트 하우스의 내부. 진찰실을 소규모 갤러리로 개조했다(왼쪽 사진). 비좁은 산모 회복실은 벽을 모두 트고, 회복실 문을 이어붙여 테이블을 만들었다.  테이블에 방 호수가 적혀있다.  이 대표는 "가치가 있거나 재활용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인테리어에 활용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이어보기

 

김지현 기자 apollonian@hanmail.net

<저작권자 © 라이프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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