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흥 지역화폐 '시루' 왜 잘 될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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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흥 지역화폐 '시루' 왜 잘 될 수밖에 없나
시흥시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이재환 주무관에게 듣는 시흥화폐 성공요인
  • 2019.05.20 16:21
  • by 공정경 기자

"일이 막히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이 돈을 보면 너무 흐뭇하고 위로가 된다."

지갑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돈을 보는 내내 얼굴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어떤 돈이기에 그리도 흐뭇해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종이돈에는 신사임당이나 세종대왕이 찍혀있지 않았다. 오이도 빨간등대, 옛 소래염전 소금창고, 연꽃 테마파크가 그려져 있다. 돈의 단위도 1000원, 5000원, 10000원이 아니라 '천시루', '오천시루', '만시루'라고 인쇄돼 있다.
 

시흥 지역화폐 '시루'

시루는 시흥시 지역화폐다. 지역화폐란 국가의 공식화폐인 법정화폐를 보완해 공동체 또는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시흥 지역화폐는 이름과 디자인을 시흥시민이 직접 만들었다. 시흥시(始興市)의 '시'와 '묶을 루(累)'를 합쳐 '시흥을 묶는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이웃에게 시루떡을 돌리듯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나눔과 소통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시흥시는 재정자립도가 55.17%다. 지자체 재정자립도 전국 평균이 53.68%, 전국 75개 시 단위 평균이 39.25%인데 비해 시흥시는 평균보다 훨씬 높다. 지자체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의미다. 반면 소상공인·자영업자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높고 부천, 광명, 안산, 안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역외소비율이 높은 편이다.

지역의 부가 지역 외로 빠져나가는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서 여러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있다. 시흥시는 200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2016년 하반기부터 민관이 동시에 적극적으로 지역화폐 도입을 고민했다. 지자체형 지역화폐는 흔히 관 주도로 도입되는데 시흥은 도입 전부터 민관이 충실하게 협력했다. 연구모임부터 시행까지 모든 과정에 민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한 점은 여러 지자체에 모범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시행한 시루는 현재 가맹점이 5200개가 넘고 발행액이 100억 시루(5월4일 기준)를 돌파했다. 올 2월 말부터 시행한 모바일 시루 가맹점도 3530개에 이른다. 지역화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하다. 

시루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형마트, 편의점, 주유소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전통시장을 비롯해 학원, 카센터, 미용실, 식당, 카페, 꽃집, 키즈카페, 체험공방, 과일가게, 떡집, 문구점, 슈퍼마켓, 헬스장, 약국, 병원, 한의원, 세탁소, 부동산, 가구점, 안경점, 요양원, 방앗간, 산후조리원, 떡볶이 포장마차까지 골목골목에서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시흥 삼미시장 4km 범위 내로 사용해보려던 시루가 시흥시 전 지역에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시흥시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이재환 주무관을 만났다. 이재환 주무관은 2017년 시흥시지역화폐추진회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아 시청 공무원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시루 도입과 시행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시흥시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이재환 주무관

"별명이 시루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시루, 일루 와 봐~" 그런다. (웃음) 우선 추진위(시흥시지역화폐추진위) 분과를 잘 나눴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분과, 가맹점 분과, 민관거버넌스 분과, 홍보연구 분과로 나눴다. 2016년 11월부터 시흥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시흥시도시재생지원센터 주최로 지역화폐 민관연구모임을 시작했고 시민강좌를 개최했다. 그때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상인회,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조직, 생협, 의료사협, 시흥시 지역공동체과가 추진회 구성원으로 들어왔다. 마포 '모아'처럼만 해보자, 삼미사장 중심에서 4km 내 범위에서만 해보자고 시작했다. 당시 일 년 동안 총회를 매달 했고 분과회의, 소모임, 운영위원회 회의 등 자주 모여 논의를 많이 했다."

지역화폐 저변 넓힌 '찾아가는 지역화폐 설명회'

논의로만 머무르는 추진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범사업까지는 해봐야 했다. 추진위를 임의단체로 설립한 후 도시재생지원센터 원도심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지원했다. 추진위가 제안한 '지역화폐를 통한 원도심 전통시장 및 지역상권 활성화 시범사업'이 선정됐다. 먼저 찾아가는 지역화폐 설명회와 시흥시 지역화폐 도입을 위한 시민 설문조사부터 진행했다.

"찾아가는 지역화폐 설명회가 저변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흥은 평생학습 도시로 유명하다. 교육받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200여개가 넘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추진회에 소속돼있는 단체 회원모임만 찾아가도 그 숫자가 어머어마했다. 예를 들어 여성인력개발센터가 있는데 직원만 해도 30명이 넘고 센터에 각종 강좌가 있다. 강좌에 오는 분들까지 합치면 몇 명인가. 외식업중앙회 시흥지부 위생교육은 체육관에서 한다. 4시간 교육할 때 2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전통시장 상인대학, 각종 동아리, 동네 프리마켓 등 3명 모인 곳부터 1000명 모인 곳까지 찾아가는 지역화폐 설명회를 200회 넘게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지역화폐의 필요성은 이미 싹이 트고 있었다. 지역화폐 도입을 위한 시민 설문조사 결과 500명 중 지역화폐를 사용하겠다는 응답이 90% 넘게 나왔다. 설문조사 결과, 쓸 수 있는 가게(가맹점)의 안정적 확보가 지역화폐 사용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지역화폐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확인됐으니 이제 시범운영을 해봐야 한다. 먼저 이름과 디자인을 공모했다. 화폐 디자인은 전문적인 영역이라 공모에서 당선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완벽한 작품이 들어왔다. 누가 봐도 프로의 솜씨였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등으로 선정했다.

"알고 봤더니 디자인 부문 당선자는 00은행 본사 디자이너였다. 이름 부문과 디자인 부문 당선자 모두 29세 시흥시민이다. 후문으로 들었는데 둘이 중학교 동창이더라. 이렇게 훌륭한 이름과 디자인이 공모전 출품작으로 나와서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당선자 아버님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하신다. 딸이 이름 붙이고 디자인한 지역화폐가 시흥시 곳곳에 돌아다니니 얼마나 뿌듯하겠나."

민-관 적극적 협력으로 시루 시행 전 가맹점 3천개 돌파

시흥 갯골축제에서의 시범운영도 성공적이었다. 화폐수집가들까지 와서 시루를 구입했다. 또한 인센티브가 시루 사용을 확실히 높인다는 점이 확인됐다. 시루는 평상시 5%, 특별기간 10% 인센티브가 있다. 민간 차원에서 여기까지 마치자 시흥시장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원래 삼미시장 4km 범위 내에서만 하려고 했다. 민이 여기까지 했는데 관이 뭐 하고 있냐며 시흥시장이 지역화폐를 전면적으로 확대하자고 적극 제안했다. 9월 17일을 목표로 시흥시에 현수막이 도배될 정도로 홍보했다. 가장 큰 관건은 가맹점 모집이었다. 지역화폐 도입 전 3천개, 2018년 5천개 가맹점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가맹점 모집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관과 협조하여 통장님들에게 읍소하며 다녔다. 통장이 450여명이다. 지역 골목골목을 제일 잘 아는 통장님이 하루에 한 개씩 일주일에 6개만 모아주면 가맹점 3천개는 금방 모으겠더라. 소극적인 분들도 몇몇 계셨지만 전반적으로 가맹점 모집에 경쟁적으로 불이 붙었다. 1통 통장과 2통 통장이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왜 내 구역에서 그러냐고. (웃음) 가맹점 확대에 애써주신 통장님들이 제일 고맙다."
 

 
마음이 쌓여서였을까. 9월 17일 이전에 가맹점이 3천개를 훌쩍 넘었다. 시루는 9월 17일 시행 첫날 2억이 팔렸고 15일 만에 20억을 돌파했다. 더 많이 팔 수 있었는데 시루를 찍어낼 시간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

올 2월 21일 지자체 최초로 모바일 지역화폐를 도입했다. 종이 시루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종이 시루는 판매대행처인 농협에 가야만 구매가 가능하고 상인들 또한 현금화하려면 농협에 가야 한다. 모바일 시루는 지역화폐 도입 전 때부터 종이 시루와 함께 고민했던 사항이었다.

수수료 없는 모바일 시루...모바일 확장성 최대한 활용해 공동체성 높이는 지역화폐로

"카드형으로 갈 것인가, 모바일 QR코드로 갈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카드형은 편리하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수수료가 붙는다. 누군가는 카드수수료를 내야 한다. 지역화폐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모바일로 결정했다. 모바일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수십억원이 든다. 블록체인 방식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블록체인 방식의 지역화폐 스타트업 기업들이 몇 곳 있었지만 신뢰성이 문제였다. 지난해 행안부-조폐공사가 모바일 지역화폐 통합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자체가 모바일 지역화폐를 개별적으로 도입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행안부 차원에서 통합플랫폼을 계획했다. 행안부도 조폐공사도 시범도시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행안부에 쫓아가서 우리가 먼저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모바일 시루는 언제 어디서나 충전이 가능하고 결재하는 데 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사용이 편리하다.

모바일 시루는 시행 첫날 1억 8천만 시루가 팔렸고 한 달 만에 22억을 돌파했다. 모바일 시루는 언제 어디서나 충전이 가능해 재구매율이 높고 소액구매가 가능하기에 사용자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시흥시는 이달부터 경기도 거주 3년 이상 만 24세 청년에게 1년간 100만원씩 지원하는 청년기본소득과 산후조리지원비를 모바일 시루로 지급한다. 지급 규모는 약 70억원이다. 산후조리지원비를 모바일 시루로 지급하기에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업체 100%가 모바일 가맹점으로 등록돼있다. 청년들의 요구와 소비패턴을 파악해 그에 맞는 가맹점 확보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시흥은 지역화폐에 적극적인 만큼 전국 최초로 지역화폐팀이 있다. 어떤 음식점이 시루 가맹이 안 되어있으면 시민들이 먼저 요구한다. 시민, 상인, 공무원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으로 키우는 지역화폐'이기에 승승장구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맹점 수를 늘리기 위해서 오늘도 수많은 발이 시흥 곳곳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지역경제 활성화는 왜 해야 할까? 결국 살기 좋은 동네, 공동체 활성화가 목표다. 모바일 시루 앱에는 다양한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모바일 확장성을 최대한 활용해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직접 얼굴 보며 시루로 결재하는 중고거래플랫폼이나 사회적기업제품 및 지역상품 쇼핑몰을 탑재해 시루로 구매하는 등 이제는 지역화폐 성장을 위해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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