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아름답게 더 가까이 더 가치롭게~ '진화하는 도시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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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름답게 더 가까이 더 가치롭게~ '진화하는 도시농업'
[2019 도시농업박람회 총감독 계원예술대학교 최정심 교수 인터뷰] 농업과 디자인 융복합한 '친환경 디자인' 전도사
  • 2019.05.23 10:44
  • by 김지현 기자
생태 순환 텃밭의 전경

여러 가지 작물들이 오밀조밀 섞여 아름답게 꽃을 피우니 텃밭인지 정원인지 헷갈린다. 몰디브 같은 휴양지에서 봄직한 세련된 차양과 의자가 있어 무엇인지 들여다보니 생태 화장실이고, 텃밭 옆의 나뭇조각으로 만든 조형물의 정체는 닭장이다.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낙성대공원 광장에서 열린 2019 도시농업박람회의 총감독을 맡은 계원예술대학 전시디자인과 최정심 교수팀이 만든 작품 같은 '생태 순환 텃밭'이다. 계원예대 디자인과 학생들 60여 명과 여러 교수와 전문가들이 한 팀이 되어 현장에서 직접 밭을 일구고 목공 작업을 하며 전시회를 준비했다.

아름답게만 꾸민 것이 아니다. 이곳의 대부분의 시설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 업사이클 작품들이다. 언뜻 캠핑카처럼 보이는 이동형 양봉장은 헌 리어카를, 지붕에 화단을 설치한 복합 보관창고는 버려진 가구를 업사이클링해서 만든 것들이다.

작물들은 모두 작물 간 궁합에 따라 배치됐다. 최 교수는 궁합작물(같이 심으면 좋은 작물, 파와 오이를 함께 심으면 파가 오이의 덩굴쪼김병의 발생을 억제하는 식)끼리 배치하고 미생물을 넣어 주는 기법으로 농약 한번 치지 않고 채소들을 싱싱하게 길러냈다. 모두 논-지엠오(Non-GMO) 토종 씨앗으로 싹을 틔워 유기농으로 길러진 오가닉 채소들이다.

고추와 들깨 마늘, 양배추와 옥수수, 토마토와 대파, 파와 오이 당근, 콩과 열무 옥수수 등이 궁합작물이다.

1000평이 조금 넘는 텃밭은 최 교수의 '생태 순환형 커뮤니티 시스템' 개념에 따라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퇴비장과 온실을 연결해 퇴비장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 텃밭의 경계부에는 해충을 막기 위한 익충호텔을 배치하는 한편 닭이 떨어진 열매를 먹기 좋게 닭장과 유실수를 함께 배치하는 식이다. 사람과 식물·곤충·유기물질이 시너지를 창출하게끔 텃밭을 디자인한 것이다.

주제관에는 아쿠아포닉스(aquaponics)·수직농장·공중 텃밭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간 속 텃밭 디자인'을 전시했다. 실내 텃밭의 최근 트렌드다. 땅이라는 장소적 한계에서 벗어나 실내와 공중 벽면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 어디서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새로운 기법들이 확산되고 있다.

아쿠아포닉스란 최근 도입된 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의 합성어로 물고기와 작물을 함께 길러 수확하는 방식이다. 물고기를 키우면서 발생되는 유기물을 이용해 작물을 수경재배하는 순환형 시스템이다.

수직농장은 전문 업체를 초청해 선보였다. 아쿠아포닉스는 계원예대 학생이 디자인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수직농장은 벽걸이용 화분과 자동 급수 및 배수 시스템을 이용해 땅이 아닌 벽면에 식물과 채소를 기르는 방법이고, 공중텃밭은 자동 관수 시스템을 설치해 공중에 텃밭을 꾸미는 방법이다.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농기구들과 농업용품들도 눈에 띄었고, 토종씨앗과 흙의 종류 미생물에 대한 정보도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20년차 도시농부인 최 교수의 도시농업에 대한 철학이 충실히 반영된 모습이다.

이번 박람회 총감독이자 농업과 디자인을 융합하는 문화기획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최 교수가 생각하는 도시 농업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질문해 보았다.

계원예술대학 전시디자인과 최정심 교수. 엠제로랩의 대표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나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며 생태순환에 대한 설명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 이렇게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텃밭은 처음 접해본 것 같아요.

내 연구주제가 생태 순환형 커뮤니티 시스템예요, 하지만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 모두 처음 선보이는 컨텐츠들예요. 모두 이번에 개발했죠. 이동형 온실 이동형 키친 등 모든 시설과 물품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특정 농기구나 시설에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내가 알려주면 그 지식을 반영해서 학생들이 디자인하고 제작한것이죠.

이 텃밭에는 이동형 양봉장과 재료창고·빗물저장소·학교·연못 등 생태텃밭에 필수적인 22개 시설이 기능적으로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어요. 작물 배치 하나하나도 모두 의미가 있고요.

- 작물들이 싱싱하고 잘 어우러져서 마치 정원을 꾸며놓은 듯 예쁘네요.

혼작을 하면 한 가지 작물만 심는 획일화된 텃밭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효율성도 더 좋아요. 조선시대부터 우리는 혼작을 해 왔어요. 궁합작물끼리 심어보면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자리를 내어주며 그 안에서 자라죠. 단일작보다 더 튼튼하게 자라요. 단일경작은 대량생산을 위해 산업시대부터 시작된 방식이죠.

계원예대 학생이 헌 리어카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이동형 양봉장.  세계적으로 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벌군집 붕괴현상으로 벌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도시는 열섬현상으로 따뜻하고 건조해 시골보다 벌이 살기 좋다. 도시 양봉을 통해 세련된 양봉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과제다.

- 지금 산업사회에서 물건의 제작부터 폐기까지 이동 구조를 살펴보면 이동거리가 너무 멀어요. 도시 밖에서 생산된 물건이 도시 안으로 소비된 뒤 도시 밖에서 폐기되니, 폐기된 자원이 재활용 등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 생산지부터 소비지까지 운송 거리가 너무 멀어서 화학연료가 많이 쓰이고 각종 농약도 과다하게 쓰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20년 전부터 농업이 도시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어요. 마일리지 제로 라이프스타일이 내 삶의 기본 기조예요. 몇 년 전에 엠제로랩(Mileage Zero Lab)도 만들었습니다(엠제로란 탄소 배출 없이 자원순환이 한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친환경 삶을 뜻한다).

엠제로 철학을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르치다가 산학협력 기회가 되서 랩으로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3년 전에는 국내 최초로 농업과 디자인을 융복합한 전공 수업도 개설했습니다. 수업을 통해 순환이 가능한 제품생산과 디자인을 고민하게 하죠. 엠제로가 되려면 마을 안에서 자원들이 생태적으로 선순환이 되야 하니까요.

우리 수업에서의 농업은 화학적인 방법으로 대량생산을 가르치는 기존의 농업 교육과는 접근법이 달라요. 자연과 순환되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디자인이 컨셉입니다.

대학에서 정규 과목을 신설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예요. 4~5년간 동아리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다가 3년 전 정규 과정에 편입된 것입니다. 올해 수업 주제는 '생태순환형 커뮤니티 시스템'이고, 이 전시도 수업의 일부입니다.

- 생산 이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제품과, 생산 단계부터 이 제품을 폐기시에 어떻게 재활용하고 순환시킬까를 고려하고 만든 제품은 큰 차이가 있죠. 학생들의 작품을 보니 얼마나 환경오염을 최소화시키려고 고민하면서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었는지 전달됩니다.

여기서 제작한 거의 모든 것들이 업사이클링 제품들예요. 이동형 키친은 버려진 냉장고를, 세미나용 테이블은 전선케이블 박스를, 돗자리는 폐천막을 사용해 만들었죠. 학생들이 이 주변을 일일이 뒤져서 구해온 것들이예요.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도 기본적인 고려 사항입니다. 도구창고는 천장에서 빗물을 모아 간단히 도구들을 씻는데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요. 태양열을 사용하는 오븐도 만들었고요.

학생들에게 늘 말해요. 일회용품처럼 사용주기가 짧은 제품이 아닌 사용주기가 긴 제품을 디자인 하라고요. 농업디자인은 유망한 미래 직업입니다. 학생들이 가능한 환경과 건강 마을공통체 모두를 살리는 디자인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농업과 디자인 융복합 수업도 개설하게 된 것이죠.

계원예대 학생들이 만든 도시농업용 시설들. 오른쪽 사진은 지붕에 화단을 설치한 복합 도구창고. 지붕에서 빗물을 모아 간이 싱크대에서 사용할 수 있기 설계되어 있다. 가운데 사진은 이동형 도구창고. 바퀴가 달려 있다. 왼쪽 사진은 이동형 온실이다. 사진제공=계원예술대학교

- 텃밭의 구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재료창고와 공유주방 학교 등 공유공간은 모두 가운데에 배치했어요. 이 중 재료창고는 생태순환텃밭의 중심입니다. 이 안에서 재활용과 리사이클(Re Cycle·재활용 및 업사이클) 에코사이클(Eco Cycle·생태순환)이 모두 이루어지기 때문이예요."

재료 창고 안에는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은 모두 재활용 물품이예요. 물건이 분해되어 거름이 될 수 있는 에코사이클 재료와 분해되지 않는 것들은 리사이클 재료들로 구분해 분류했고, 칠판 한편에는 매주 어떤 종류의 리사이클 제품들이 많이 배출되었는지 표시해 놓았죠. 주민들이 스스로 체크할 수 있게요.

생태순환이 잘 이루어지려면 재료창고 운영이 잘돼야 합니다.

육묘를 하는 공간도 필요해요. 토종 씨앗을 줘도 상인들이 육묘를 안 해주기 때문에 직접 육묘를 합니다. 찾는 사람이 없거든요. GMO 문제도 정말 심각해요.

나선형 텃밭. 밭을 일구며 나온 돌을 쌓아 만들었다.

나선형과 둔덕형 텃밭도 만들었어요.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은 형태입니다. 이렇게 만들면 표면적이 넓어져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어요. 또 일반적으로 텃밭에 물을 주면 바로 밑으로 다 빠지는데 나선형과 둔덕형으로 만들면 토심이 깊어 흙이 물을 머금게 되요. 그러면서 아래로 조금씩 흘러내리죠. 최소의 물로 많은 작물을 키울 수 있어요.

둔덕형 텃밭의 또 하나의 장점은 밑에 통나무와 볏짚 등을 쌓고 흙을 덮어 조성하기 때문에, 통나무와 볏짚 등이 썩으면서 자연거름이 되요. 몇 년간 거름을 안 줘도 되죠. 관악산에서 전지하고 버리는 통나무들을 받아 만들었어요.

건너편 유채꽃밭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어요. 공동체 텃밭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예요. 목공도 하고 교육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하는 공간이예요. 이동형 양봉장도 설치했고요. 도시 양봉 중요합니다.

도시농업은 심미적인 즐거움도 중요해요. 곳곳에 꽃도 심고 담양에서 대나무를 사와 대나무로 작은 조형물도 만들고 포토월 등도 설치했죠. 대나무 살 아래 심은 강낭콩이 다 자라면 조형물을 다 뒤덮어 그늘을 제공할 거예요.

유채꽃밭 사이 길은 모두 곡선으로 구성했고요. 자연에는 직선이 없죠. 직선으로 만들면 재미도 없고요.

- 처음에는 단순히 예쁘게 조성된 텃밭으로 보였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대단하네요. 업사이클링 제품들로 이렇게 세련되게 텃밭을 구성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아름다운 것이 다르게 보여요. 저 공중텃밭을 보세요. 저 토마토 잎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샹들리에 같지 않나요?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예요. 지금 우리는 산업사회 기준에 따라 갖게 된 심미관에 따라 아름다움을 즐기죠.

공중 텃밭에 심은 토마토. 외부에 빗물저장 탱크를 설치하고 자동 관수 시스템은 예산 등 문제로 구현하지 못했고 파이프로 텃밭만 구성했다. 토마토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청량한 느낌을 준다.

저 색채 팔레트도 언뜻 팬톤 칼라 같지만 식물 색으로 구성된 팔레트예요. 같은 식물도 한 달 단위로 다른 색을 내죠. 몇 월의 어느 식물의 색인지 표시되어 있어요. 색감이 굉장히 아름답죠.

지금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결정된 모듈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하지만 궁합작물이 자라는 것만 봐도 근원적인 효율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하게 되죠. 산업사회의 기준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왼쪽 사진은 도시 농부를 위한 세련된 우비를 제작해 달라는 최 교수팀의 제안을 받고 한 패션 브랜드 업체가 디자인한 제품. 우비용 원단으로 점프수트형 우비를 만들었다. 가운데 사진은 농부들의 경우 장갑을 껴도 흙을 파거나 돌을 고르는 일이 많아 손가락이 거칠어지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 플라스틱 손가락을 덧댄 장갑. 계원예대 학생이 디자인해 제작했다. 가방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농기구들을 편하게 꼽고 다닐 수 있게 제작됐다. 오른쪽 사진은 친환경 생태 화장실. 수세식 화장실의 경우 과도한 물사용으로 하천을 오염시킨다. 물을 절약하고 텃밭에 거름을 공급하기 위해 변기 안쪽을 들여다보면 소변과 대변이 분리되어 있고 톱밥과 왕겨를 담은 통을 함께 둔다. 톱밥과 왕겨는 분변의 악취를 막아주고 거름으로 숙성시켜 준다. 

-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도시농업과 일반 농업은 그 목적도 다르고 출발선도 다르죠. 도시농업은 취미와 여가의 비중이 큰 만큼 기능적이면서 세련되고, 이동이나 보관이 쉬운 형태의 농기구나 창고의 수요가 예상됩니다. 

아직 도시 농업에 특화된 제품들이 많이 없어요. 학생들이 만든 제품이 상품성이 있다면 (이 박람회를 주최한) 서울시나 관악구가 주문을 할 수도 있죠. 그러면 창업이 되는 것이고요.

아이들에게 화석연료를 발생시키지 않고 환경 오염을 시키지 않는 디자인, 자원과 생태 순환이 가능한 제품에 관심을 갖고 디자인을 하라고 교육했고, 몇년간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가 크게 성장했어요.

아이들이 계속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도시 농업 디자인으로 창업하거나 일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박람회 준비를 위해 함께 텃밭을 일군 학생들과 최정심 교수(맨 오른쪽). 사진제공=계원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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