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아프면 산재입니다! 본인 탓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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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아프면 산재입니다! 본인 탓 마세요
[산재보험 문제점 진단 ①] 질병으로 인한 산재신청률 왜 낮은가? 낮은 산재인식수준과 산재 은폐 관행 탓
  • 2019.06.14 10:11
  • by 김지현 기자

"앞으로는 산재 인정이 신속하게 처리되어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가 지난 5일 산재 신청을 한 지 10년 만에 마침내 산재 인정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며 밝힌 소감이다. (관련기사 '10년만에 산재 인정받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의 눈물' 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3843)

"나는 산재다"라고 그 긴 시간 수없이 외쳤지만 매번 "개인의 질병"이라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판단에 얼마나 응어리가 졌는지 그 분노와 억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질병으로 산재보험을 인정받는데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것일까. 그리고 어떤 제도들이 마련돼야 다시는 그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 쉬지 못해 아프고, 아파도 참고 출근해야 해서 더 아픈 직장인...이게 산재인가요?

사실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 대부분은 잠재적인 제2의 한혜경일지 모른다. 대부분 만성질병 하나쯤은 앓고 있으니 말이다. 두통이나 소화불량부터 우울증·디스크·고지혈증까지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산재를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산재라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분명히 오랜 기간 많은 양의 일을 하느라 무리한 탓에 몸이 아파졌을텐데 말이다. 오히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몸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건강관리를 못 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이 산재라고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은 고스란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심지어 암에 걸리고 뇌출혈로 쓰러져도 유전병이 있거나 체질이 약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산재재심사위원회 위원이자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소속의 권동희 노무사는 "질병에 대한 산재인정률은 낮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산재신청률은 낮다. 왜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산재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아서다"라며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인정 및 청구가 노동자의 중요한 권리라는 점 ▲산재신청을 방해하거나 은폐하는 행위는 중요한 법률위반으로 처벌된다는 점(산업안전보건법 이하 ‘산안법’ 제10조 및 제68조) 등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거나 홍보해야 한다"고 두 기관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의 권동희 노무사. 산재재심사위원회 위원이며 지난해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권 노무사는 "이는 작년 9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 당시에도 제안한 내용이다. 과거에도 수차례 여러가지 행정적인 조치를 제안했다.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5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국민들은 직업과 질병의 관련성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질병은 산재'라는 인식이 희박하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라며 아쉬워했다.

■ '협박하고 달래고 시침 떼고'...산재 은폐 부르는 보험료 감면 혜택

설령 노동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산재라고 인식해도 산재 신청은 쉽지 않다. 계약직일 경우는 재계약이 안될까봐, 정규직일 경우라 해도 회사에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후유증 발생시 재요양 혜택과 장해급여도 받을 수 있지만, 생계가 급한 직장인들에게 산재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더구나 사업주가 기를 쓰고 산재를 은폐하거나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국민건강보험은 노동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보험료를 부담하지만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전액 보험료를 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노동자들은 산재를 소위 공상처리(사업주가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산재처리에 갈음하여 일정 금액을 직접 보상하는 것)하거나, 치료비를 개인이 부담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게 된다.

사진출처=노동건강연대

산재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는 돈은 기업이 벌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질병 치료비용은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는 의미다.

산재법 제116조에 산재신청에 대한 사업주의 조력의무가 규정되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의무 위반에 대한 아무런 제재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비로소 사업주 조력의무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는 요원하다.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과태료의 수준이 적정한가는 별론(別論)이다. 개정안은 사업주 조력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어있다.

또 산재가 적은 우수기업에 보험료 감액 혜택을 주는 '개별실적요율제도'도 사업주들의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기업의 적극적인 산재 예방 효과를 의도했다고 하나,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대기업의 '위험의 외주화'와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산재 은폐 부작용을 더 크게 일으켰다.

주로 대기업인 원청은 위험한 업무는 도급이나 하청을 주는 방법('위험의 외주화')으로 산재를 줄여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누렸고, 대기업 대신 위험한 업무를 떠안은  하청업체나 수급업체들은 더욱 노골적이고 교묘하게 산재를 은폐해 보험료 인상 부담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3월 하청 파견 노동자의 산재를 일정 경우 원청의 산재건수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개정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안이 산재 은폐를 막는데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원청의 눈치를 보는 하청업체가 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방해할 것이 불보듯 뻔하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권동희 노무사는 "노동자가 산재라고 인식하면서도 신청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문제다. 해결이 쉽지 않다. 단순히 권리의식을 함양시킨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실질적인 산재은폐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개별실적요율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잠깐 놀라지 마시라. 우리는 아직 산재신청 절차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신청 절차상 어려움과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에 대해서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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