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산재 인정의 길'...근본적인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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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산재 인정의 길'...근본적인 해결책은?
[산재보험 문제점 진단 ②] 심사권 판정권 분리 독립 필수...승인률 안정시키려면 고시 아닌 법으로 개정해야
  • 2019.06.14 19:30
  • by 김지현 기자

1편에서 이어집니다.(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4022)

 ■ 어렵고 복잡하고 번거롭고...포기를 부르는 산재신청 절차
 
운좋게 고용상 불이익의 위협이 없는 경우라고 해도 산재 신청 절차는 결코 만만치 않다. 산재신청 서류는 내용이 복잡할 뿐 아니라 항목도 많다. 질병 관련 사항뿐 아니라 증인도 적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 1월 산재 신청 시 사업주의 확인을 받도록 했던 절차가 폐지됐지만 사업장관리번호는 여전히 적어내야 한다.

의사로부터 소견서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의사들은 산재에 무관심하다. 진료를 보면서 환자의 직업을 묻는 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산재 환자인지 살펴보기는커녕 환자가 산재를 주장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 소견서 작성을 부탁해도 항목이 많다며 작성을 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실정이다.

산재신청서 양식.

권 노무사는 이에 대해 "공무원의 경우 진단서만 첨부해 공무상요양을 신청할 수 있다"며 "재해 노동자도 진단서만 첨부해 산재를 신청할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또한 국선 노무사제도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재해자가 산재라는 것 증명해야...산재 인정률 높이려면 입증책임 완화가 관건

산재신청 서류 접수를 마치고 나면 진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산재 신청자는 자신의 질병이 산재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현행법상 산재 입증책임이 신청인(혹은 유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혜경씨도 자신의 뇌종양이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화학물질 등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발병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권 노무사는 "재해노동자가 상당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업주가 입증에 관련된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왜곡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산재 신청을 방해할 경우 산재 인정은 사실상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입증책임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주평식 과장은 "올해 산재 관련 정책 방향이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노동자의 입증책임 완화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상태는 아니다.

■ 어렵게 어렵게 입증했는데...질판위 등 의학적 판단해 산재 신청자 좌절시키기도

현재 산재 인정의 가장 일반원칙인 산재법 37조에 따르면 산재는 상당인과관계에 따라 판단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상당인과관계에 따른 판단이란 근로자의 건강상태, 업무환경, 가족력, 치료경과 등 제반 사정 등을 고려해 질병이 발생할만하다고 인정되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과는 다른 개념으로 경험칙이나 사회통념에 따라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 : 위원장 제외 의사 4인 법률가 2인)와 산업재해보상보험위원회(이하 '산재심사위원회' : 위원장 제외 의사 4인 법률가 2인), 산재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이하 '산재재심사위원회' : 위원장 제외 의사 5~6인 법률가 2~3인)의 주요 구성원은 의사다. 이 세 기구의 판정이 의학적 판단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유다.

다시 말하면 법률가들의 시각으로는 산재로 인정될 사건임에도 의사들의 경우 의학적 원인주의에 근거한 판단을 내려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재해 노동자는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권 노무사는 "의사가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의사에게 법률적 판단을 바라기 보다는 위원회에 참석하는 임상 의사 수를 1~2명 정도 줄이고 대신 법률가 숫자를 늘리는 것도 해결책이다"는 입장을 전했다. 

■ "산재 심사기구와 판정기구의 분리 독립이 근본적인 개선책"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의 권동희 노무사.

권 노무사는 "산재 절차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심사권한과 판정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질판위와 산재심사위는 근로복지공단에 소속되어 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고용노동부 산하 기구인 이상 세 기구가 모두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히며 "고용노동부의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할 노동부에 산재 판정권한을 주는 것은 지나친 권력 집중이다. 이런 구조에서 고용노동부의 판정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사기구와 판정기구의 분리 독립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라며 "공무상재해보상법을 보면 예전에는 공무원연금공단이 재해 판정을 하고 이의가 있는 경우 공무원 연금공단을 관장하는 인사혁신처에 이의신청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사혁신처가 재해를 판단하고, 이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도록 개정됐다. 독립성과 공정성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면 판정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
 
지금의 질병판정위원회는 공단 산하의 일개 기구에 불과하다. 서울판정위 위원장만 외부 전문가고, 다른 위원장들은 모두 공단 직원들이다. 심사위원회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아니다. 단순히 근로복지공단 산하 기구다. 그나마 재심사위원회는 행정심판위원회다. 하지만 결국 노동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힘들다. 

재작년부터 산재 인정 절차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나 이런 상황에서는 정권에 따라 위원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제도도 역시 바뀔 수 있다. 주로 고시나 규약으로 산재 절차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는 장관이 만드는 것이니까.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 "결국은 법률 차원에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제도가 안정될 수 있다"

2000년도 초반에 뇌심질환 산재 인정률이 꽤 높았다. 40% 정도, 지금이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에 질판위가 도입되면서 인정률이 곤두박질 쳤다. 12%까지 떨어졌으니까. 따라서 사람들이 지금 인정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알고보면 좋아진 것이 아니다. 나빠진 것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산재 사고의 경우는 예전부터 인정률이 90% 정도로 높았다. 그런데 질병 승인률이 워낙 왔다갔다 하니 국민들이 '산재 인정이 힘들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즉, 고시로 산재 인정 기준을 어떻게 변경시키느냐에 따라 승인률이 천당과 지옥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지금 산재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지점이 불안한 것이다. 법으로 개정되야 하는데 법으로 개선된 제도가 몇 개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산재정책을 담당하는 자와 서울판정위원회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질병인정 기준도 고시로 할 것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하고, 판정권을 가진 위원회는 법으로 노동부에서 분리 독립시키는 식으로 모든 제도들의 층위를 한 단계씩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시범운영 중인 산재관리의사제도, 조기치료 활성화에 기여할까?

근로복지공단(심경우 이사장)이 올해 1월 14일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대강당에서 산재관리의사(Doctor of Work-related accident, DW) 39명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

한편 노동부는 업무상 질병승인 이후에 치료가 진행돼 산재 환자들의 치료가 늦어진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올 초부터 산재관리의사제도를 시범 운영 중이다. 산재관리의사는 ①산재로 의심되고 ② 증상악화의 예방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검진과 치료를 선행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의사다. 노동부는 "내년쯤 산재관리의사제도를 확대해 산재 의심 환자가 조기 치료 받을 수 있게끔 운영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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