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장의 안전이 곧 주민의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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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장의 안전이 곧 주민의 안전
  • 2019.07.10 17:21
  • by 이백윤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 운영위원)

지난 5월 17일 오전 11시 45분경 서산 대산 한화토탈 공장에서 한 화학물질(스티렌모노머)이 담긴 탱크 상부에서 하얀 유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렌모노머는 노출될 경우 두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입니다. 12시 23분께 스티렌모노머와 남은 기름 성분이 벌겋게 뿜어져 나오는 1차 분출이 있었습니다. 총 4차 분출이 있었고 다음날 새벽 3시 40분께 다시 유해물질이 누출되는 2차사고가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대규모 4차 분출이 일어난 후 17분이 더 지난 1시 28분 경 서산시가 알리는 마을 방송을 듣고 사고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서산의료원은 노동자들과 주민들로 북적거렸고 주민 등 2600여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회사 쪽이 심각한 사고가 났고 이로 인해 주민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119에 연락조차 하지 않고 소방서와 방재센터 등에도 늑장 연락을 하거나 아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총체적 부실 경보와 알림, 조기대응 미흡이 큰 참사를 불러올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화학단지가 적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화학사고 예방과 조기 신속 대응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화토탈 사고를 교훈 삼아 철저히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안전칼럼에서 전합니다. (편집자 주)

 

ⓒ 한화토탈


숙련되지 않은 대체인력의 투입
화학사업장은 4년에 한 번씩 공장 대정비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설비점검과 교체, 각종 안전시스템의 원활한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4년을 준비한다. 평상시 공장 전체가 가동되고 있을 경우 안전 문제로 인해 파업을 자제해온 한화토탈 노동조합은 이 대정비 기간 동안 파업을 단행했다. 한화그룹으로 매각되기 전에 삼성토탈이었던 시절에 회사로부터 감시당하고 억눌려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던 대다수 노동자들은 과거로 회귀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컸고, 화학사업장에서는 유례가 없는 한 달여간의 장기파업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측은 일찌감치 파업을 대비했다. 올해 81명의 신규인력을 채용했고 파업이 일어나자 사무직을 현장 가동에 투입하였고, 이 대체인력들을 회사에서 숙식하게 하면서 많게는 주당 100시간씩 초과노동을 시키면서 공장을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사고 위험성을 수차례 경고했다. 화학사업장 특성상 수십 년 숙련된 노동자들이 작업을 수행해도 사고가 발생하는데 비숙련자들이 설비를 가동할 경우 사고 위험은 훨씬 증가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유출사고 발생 전, 지난 4월 26일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탱크 내부 잔여가스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설비를 가동했다가 큰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사측은 문제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가동폭을 늘려 공장을 전면 재가동하려고 한 상황이었다.

무리한 공장 가동이 낳은 참사
5월 17일, 모두가 우려했던 사고가 발생했다. SM(스틸렌 모노머)물질이 가열되어 탱크에 설치된 안전밸브를 뚫고 약 1시간 동안 100톤가량이 대기 중으로 유출되는 사고였다. 미숙한 작동으로 인해 발생하지 않아도 되는 물질이 생겨나 탱크 내부 필터를 막았고, 10도 미만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SM을 60도 가까이 관리되는 탱크로 보내고, 심지어 일주일 동안 이 상태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자 현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 심지어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서산 시내까지 악취가 퍼졌고, 노출된 시민들은 구토, 호흡곤란, 두통 등의 증세를 호소했다. 현재 2,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후, 서산의 시민사회단체, 주민단체, 노동조합은 집회를 열고 한화토탈 사측에 공장 재가동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화토탈은 공장 재가동을 멈출 생각이 없음을 표명했다. 또 환경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 주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민간 3주체가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기업의 자체 조사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의 조사 또한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환경부, 서산시, 충남도, 노동부 등이 참여하는 합동조사에 시민단체와 주민단체가 참여해서 현재 사고 원인 등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합동조사에 여전히 큰 숙제가 남아있다.

관계기관 합동사고조사가 갖고 있는 문제점
첫째, 사고원인 조사에 있어 노동부의 조사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합동조사를 수행하는 관계기관 중 환경부와 노동부가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다. 심지어 사고원인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인적 요인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데, 합동조사 중간발표 내용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중간발표에는 마치 ‘종종 일어나는 문제가 이번에 좀 커진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고 사고원인에 있어 아무런 내용이 없다.

둘째, 사고조사에 ‘사고 직후 관계기관의 초동대처’ 내용이 빠져 있어 이를 반드시 함께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고지 부분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 한화토탈은 17일 사고 당시 40여 분이 넘도록 신고하지 않고 자체 수습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관계기관 역시 사고 접수 후 환경부, 서산시 등이 어떻게 사건을 판단하고 주민들에게 고지했는지 따져야 한다. 주민들에게 사고 사실이 제대로 전파되었다면 수많은 시민들이 유해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시민단체가 요구하였고 사고조사 내용에 포함되어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셋째, 합동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충분한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합동조사단은 시민단체와 주민들을 참여시켰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실제 참여하는 시민들의 권한은 전혀 보장하지 않고 있다. 향후 조사 계획, 시민 측이 요구하는 자료의 제출 등이 이뤄져야 한다.

향후 판단과 남은 과제
합동조사에서 이번 사고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모두 드러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파업은 끝났고 인근 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고, 기업에 대한 표면적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고조사가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나야 할 수많은 문제점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는 2라운드를 맞이해야 하고 싸워야 한다. 그 과제는 이러하다.

첫째, 사측이 안전보다 이윤을 위해 행해왔던 행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사고 원인에 대해 관계기관 합동조사에서 명확히 밝혀야 할 부분이 추가되어야 한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왜 공장 가동을 무리하게 진행했는지, 왜 40여 분이 넘게 신고하지 않고 자체 방재시스템을 가동해서 사고를 더 키웠는지...

둘째, 대산의 화학사업장들이 신규시설 투자보다 안전대책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학사업장 설비의 내구연한이 다하는 30년을 기점으로 노후설비로 인한 사고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산 석유화학단지는 90년대 초반 유치되었고 여수에 이어 국내 생산량 2위 규모이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 화재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각 화학사는 노후시설 교체와 미흡한 안전시스템 개선을 등한시하고 신규 확장에 여념이 없는 상태이다. 실제 충남도 등과 MOU를 체결하고 서산 석유화학특화단지를 조성하면서 총 1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셋째, 화학사고예방 및 대응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하다.
사고는 반복되고 있지만 관계기관의 협력체계는 발전할 기미가 없다. 이번 사고를 기점으로 사고예방, 사고 발생 시 대응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닥칠 위험
국민들은 자기 집 주변에 있는 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고 싶어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디를 찾아봐야 할지 헷갈리고 어렵다. 혹여 어렵게 알아낸다 해도 내용이 너무 어렵고 전문적이어서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모든 국민이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되도록 화학물질 관리체계, 화학사고 대비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할 이유다.

화학물질의 일상적 유출 혹은 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산업사회의 고도화와 함께 수반된 화학산업 성장에 맞춰서 대비 능력도 배가되었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화토탈 사고에서 볼 수 있듯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윤추구 위주의 사고방식에 갇힌 대다수의 기업은 안전설비 투자 대신 유출과 방류를 택한다. 불과 한 달 전 현대제철에서도 유태인 학살에 쓰였던 청산가스를 대기 중으로 무단 방류하다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의 자구적 노력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생산활동에서 상존하는 위험요소에 대해 주변 주민들, 시민들이 직접 개입하여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에게 닥칠 위험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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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윤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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