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복덕방]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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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복덕방]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프롤로그 : 시간과 공간, 그 안에 있는 우리 삶의 주인 됨을 찾아서
  • 2019.08.26 09:47
  • by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복과 덕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복덕방(福德房)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과거 동네에서는 제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음식과 돈, 노동력을 제공하고 당산나무나 근처 넒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그 공간을 복덕방이라고 일컫곤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복덕방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업자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이름도 부동산중개소로 바뀌었다. 집과 토지를 의미하는 부동산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와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택, 시민자산화, 공유공간 등 모델이 소개되고, '사회적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인식틀과 담론이 제안되고 있다. 삶과 사회가 깃든 부동산인 '사회적 부동산'을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함께 라이프인이 소개한다.


우리 집 아이들 중 첫째, 둘째가 열 살이 넘어가면서, 찾아 읽는 책이 기존과 달라지고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 있었다. 최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 속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 내용을 공유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그런 책 중 하나였다.

『모모』 는 '시간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돌려준 한 아이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 시간도둑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담보로, 사람들에게 현재를 유보하게끔 하고 시간을 훔쳐낸다. 소설은 모모가 시간도둑들로부터 빼앗겼던 이들의 시간을 회복시켜 주고, 사람들이 이전의 일상을 되찾는 것으로 끝마친다. 하지만 모모가 사람들에게 되찾아준 것은 비단 그들의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 즉 삶의 의미와 본질을 다시 마주하며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공간도 함께였다고 생각한다. 마치 모모의 친구인 청소부 할아버지 '베포'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비질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깊숙이 음미하고 누리던 그 삶을 다시 회복한 것처럼 말이다.
 

미래의 안위를 담보로 현재의 시간을 저당잡힌 소설 속 사람들처럼, 많은 이들이 '노후 대비',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로 인해 현재의 시공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모모가 사람들의 시간과 일상을 되찾아온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되찾을 것인가? ⓒ비룡소


미래에 담보 잡힌 우리의 시간과 공간

모모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지금 우리네 삶은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쓴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기술이 진보한 100년 뒤의 미래상을 예측했다. 100년 후에는 생활수준이 4~8배 나아지고, 하루 3시간 혹은 주간 15시간 노동이면 충분한 세상이 올 것이며, 사람들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 예술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케인스의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 수록된 『설득의 에세이』. 미래 세대에 대한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예언은 안타깝게도 빗나갔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높아졌으나, 장시간 노동 관행은 여전하며, 높은 물가와 집값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임금의 상당 부분을 빚을 갚는 데 들이고 있다. ⓒ 부글북스

케인스의 예언대로 소득수준이나 생산수준은 눈에 띄게 높아졌으나, 그가 그린 유토피아적인 미래는 불행히도 적중하지 못했다. 우리는 점점 더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과 기술/디지털 혁신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의 사회문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전망하며 수동적으로 이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회색신사들에게 속아 점점 시간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들처럼, '노후 대비', '내 집 마련'이라는 잡히지 않는 목표에 현재를 저당 잡힌 채 말이다.

모모가 사람들의 가슴속, 삶 속에 피어나는 시간의 꽃을 가지고 회색신사(시간도둑)들을 물리친 것처럼, 우리가 우리 인생을 온전하게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빼앗긴 우리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 ⓒ Penguin Books


공간은 우리 삶을 담는 그릇이며 삶의 현장

공간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공간은 또한, 우리 삶의 무수한 부딪힘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재'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가는 장소이며, 삶의 본질과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현장이기도 하지 않은가?

공간은 단순히 하나의 부동산 혹은 자산에 불과하다는 우리 시대 회색신사들의 속삭임에서 벗어나서, 공간이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으로(나는 이를 ‘사회적 부동산’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더함'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본 연재에서 '소셜복덕방'을 표제로 하여 글을 쓰기로 한 까닭이기도 하다.

기억하시는가? 예전의 복덕방은 마을에서 단순히 집과 토지를 거래하던 곳이 아니라 그 마을과 이웃에 대한 이야기, 말 그대로 삶에 대한 복과 덕을 나누며 공간을 연결해 주던 곳이었다. 이제 그런 의미에서 '소셜복덕방'에서는 공간을 둘러싼 우리의 삶 이야기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나눠 보고 싶다. 1부에서는 공간을 새롭게 소유하는 방식과 사례에 대해 더 많은 독자에게 알리고 싶다. 그리고 2부에서는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고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부동산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망과 금융조달이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할지에 대해 제언하고 싶다.

『모모』의 이야기에 함께 공감했던 우리의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앞으로 그들의 미래가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미래는 그냥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겹겹이 쌓여 가는 우리의 현재와 잇닿아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현재가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 삶의 각종 터전이자 우리가 딛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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