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협동조합 운동의 초기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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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협동조합 운동의 초기 역사 이야기
[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⑤] 퀘벡 사회적경제의 선구자들
  • 2019.09.20 17:31
  • by 김진환 (사회적경제 국제교류센터 연구원)
10:01

'사회적경제 국제교류센터 CITIES'는 각 나라의 사회적경제간 지식 공유와 혁신의 확산을 위한 활동가들의 교류를 활성화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201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 2회 국제사회적경제포럼 GSEF에서 참가자들의 결의로 출범했다.

사회적경제 모범사례와 관련 지식의 확산을 도모하는 '사회적경제 국제교류 센터 CITIES'와 '라이프인'이 캐나다 퀘벡주의 사회적경제의 전반을 소개한다. 공정무역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회적경제 생태계, 사회적금융, 사회적주택, 돌봄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캐나다에서 처음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기록은 19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과 유럽의 협동조합 운동의 자극을 받아, 협동조합을 출범시켜보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었다. 1813년에는 어퍼 캐나다의 램튼 카운티에서 설립되었던 오웬주의 공동체, 1840년대에는 노바스코시아에서 로치데일 협동조합 등에 자극받은 소비자 협동조합 설립 시도가 있었고, 1880년대에는 노동조합들이 주도가 되어 시도한 소비자 협동조합들이 있었다. 대부분 조합원 모집 실패, 경영역량 부족 등의 이유로 실패로 돌아갔다. 

여러 시도 중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1840년대부터 시작된 상호공제회와 1860년대부터 시작된 농업 협동조합들이었는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협동조합의 등장은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의 교역 활성화, 철도 등 운송수단의 발달로 인한 시장 접근성 개선 등 농업 분야의 사업기회와 기존의 여러 시도들로 인해 확산되었던 협동조합 모델에 대한 인식이 서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
 

퀘벡 농업 협동조합과 공제회 연합회의 발달

1860년에서 1900년 사이, 오늘날의 온타리오, 퀘벡 을 비롯한 캐나다 동부에서는 약 1,200개의 낙농협동조합이 설립되어 활동을 했는데, 정치적 안정 및 낙농업에 유리한 캐나다의 환경으로 인해 공급이 성장하고 있었고, 철도의 발달로 인해 치즈 및 버터 등의 가공품 운송이 용이해 지면서, 영국 시장으로의 수출 기회가 열리는 등 수요 시장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다수의 농장들은 소 10두 미만의 작은 농장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버터나 치즈 등 유가공품 제조를 위해 15-20개의 농장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가공공장에 투자하고, 공동으로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오늘날 퀘벡 최대 농업 협동조합 중 하나인 '라 콥 페데레(www.lacoop.coop/)'는 1922년 세 개의 농업 협동조합이 합병하면서 설립되었는데, 이 중 하나가 이 시기 낙농업 호황을 바탕으로 1910년에 설립된 퀘벡 치즈 협동조합이었다. '아그로푸르(www.agropur.com/en)'와 더불어 퀘벡의 양대 농업 협동조합인 라 콥 페데레는 오늘날 매출 65억 캐나다 달러, 회원 12만명, 회원 조합 100여 개, 직원 1만9천명의대형 농업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라 콥 페데레는 메이플 시럽, 곡물, 축산 등 퀘벡의 거의 모든 농업 부문 생산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비료, 살충제, 농기구 등 영농 자재를 판매하는 농업 법인 솔리오, 육가공 업체 올리멜, 유통업체 비엠알 등 농업 관련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운영하는 퀘벡 최대 농업 협동조합이며, 협동조합 형태의 농기업으로는 전 세계에서 24번째로 큰 기업이다.

 

왼쪽부터 사료 판매장, 농식품 판매점, 농업용품 판매점 ©La Coop fédérée

19세기 중반 퀘벡에서 농업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보험회사들이 농민들의 보험 가입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농가들이 자연재해나 사고에 대비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가 건물, 설비, 가축 등에 재난 피해를 입는 상황을 대비해 농민들이 상호공제회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상호공제회 설립 초기에는 축적된 자산이 없었기 때문에 공제회 가입자들이 공제회에 가입할 때 작성하는 약정서에 다른 회원이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 각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추렴한다는 조항을 담은 약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는 공제 보험에는 '프로뮤뛰엘(Promutuelle, www.promutuelassurance.ca/en)'이 있다.
 
프로뮤뛰엘의 기원은 1852년 퀘벡 헌팅던 지역에서 농민들이 주도하여 설립된 ‘보아누아(Beauharnois) 화재 공제보험’이 그 시초이다. 퀘벡 전역의 많은 농민들이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최초의 공제회가 설립되어 잘 운영되는 것을 본 농민들은 유사한 상호공제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1900년에서 1956년 사이 공제회들의 숫자가 급속히 성장하여, 1956년에는 퀘벡 전역에 327개로까지 증가했다. 개별 공제회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보험회사들을 위한 보험회사, 즉 재보험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1956년 공제회 연합회를 설립하고 재보험 설립의 기초를 닦기 시작, 퀘벡 전역의 공제회들을 규합하여 마침내 1976년 재보험을 설립하기까지 이른다.  오늘날 프로뮤뛰엘은 가입자 수 63만명, 매출 약 8억7천만 달러(CAD), 자산 규모 14억3천만 달러 (CAD)에 이르는 종합보험 그룹이다. 프로뮤뛰엘 그룹은 16개의 회원 공제회로 이루어진 2차 협동조합, 즉 공제회 연합회이며 산하에 프로뮤뛰엘 재보험, 보증기금, 투자기금 등의 법인들이 소속되어 있다.
 
프로뮤뛰엘의 전신, 보아누아 화재 공제회 설립자 중 한 명인 Dr. Luc-Hyachinthe Masson ⓒ Topley Studio / Library and Archives Canada / PA-025617
보아누아 화재 공제회의 회의록 ⓒ Centre d’archives de vaudreuil-soulanges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출범한 퀘벡의 신용협동조합 

협동조합 조직에는 그 취지와 활동에 있어서 협동의 이익과 연대의 당위가 공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퀘벡 협동조합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농업 협동조합과 공제회 연합회가 사업상의 기회를 포착하고 위험에 공동 대비하는 등 협동의 이익에 기반하여 출발하였다면, 신용협동조합은 다른 두 가지 형태의 협동조합에 비해서 보다 연대의 가치에 기반하여 출범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용협동조합 그룹인 '데자르뎅(www.desjardins.com/ca/)'은 1900년 고리대금업의 횡포에 충격을 받은 의회 속기사 알퐁스 데자르뎅에 의해 시작되었다. 알퐁스 데자르뎅 본인의 기록에 의하면, 의회 속기사로 일하던 1897년,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하던 한 의원이 150 달러를 빌린 채무자가 5천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들은 것이 신용 협동조합의 모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유럽 협동조합 운동의 지도자들과의 교신을 통해 신용협동조합 모델을 연구한 그는 1900년 12월 퀘벡주 레비시에서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죽을 때까지 신용협동조합의 확산을 위해 헌신했는데, 초기 상당기간 동안 알퐁스 데자르뎅을 비롯한 협동조합의 실무자들은 급여를 받지 않는 봉사자로서 다른 직업과 겸직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신용협동조합을 운영했다. 

 

알퐁스 데자르뎅, 1913 ⓒ Alfred George Pittaway- Confédération des Caisses Populaires DesJarins


데자르뎅 그룹의 회원조합 다수는 보통 지역 단위로 조직된 신용 협동조합인데, 퀘벡의 사회적경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동과 협동조합의 협력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경제금고들의 발전과정이다. 알퐁스 데자르뎅이 퀘벡에서 신용협동조합들의 형태를 설계할 때에는 지역공동체를 중시하여 당시 천주교의 교구 단위에서 설립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를 지역단위 주민금고 또는 민중금고 (Caisse Populaire)라고 불렀다. 그러나 알퐁스 데자르뎅은 상황에 따라 지역 단위의 주민들이 아닌 다른 단위의 공동체로도 신용협동조합의 조직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1908년 알퐁스 데자르뎅이 작성에 참여한 ‘신용협동조합 문답’에서, ‘협동조합의 구성은 « 이해를 공유하는 공동체 »의 구성원들이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기반이 될 수 있으며, 그 기반은 지역공동체가 될 수도, 동일 직종 종사자, 같은 교회, 같은 공장 등 여러 가지가 신용협동 조합의 단위가 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경제금고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경제금고들은 카톨릭 노동자 총연맹 몬트리올 및 퀘벡 2개 지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20세기 초,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새로운 흐름’ 이후 전 세계 카톨릭 교회에 확산된 사회 교리의 영향으로, 카톨릭 교회는 협동조합 운동이나 노동 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 노동조합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 역할을 했다. 노동조합 단위로 조직된 신용협동조합은 지역공동체 단위로 조직된 신용협동조합에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었으며, 노동자들의 단합을 강화시켜 주었고, 파업 등으로 자금이 필요할 때 경제금고간 상호 연대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1920년대에 설립된 2개의 경제금고는 여러 번의 합병을 거쳐 1971년 오늘날 연대금융분야의 가장 큰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뎅 연대경제금고(www.caissesolidaire.coop/)가 되었다. 데자르뎅 연대경제금고는 자산이 7억 7천만달러 (CAD)에 달하며, 데자르뎅의 29개 회원 경제금고 중 2위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회원이 15천명, 법인 회원이 3천 곳 정도 되며, 전국노동조합연맹 (CSN)의 회원 조합 및 사회적경제, 노동, 커뮤니티, 문화 부문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오늘날 데자르뎅 그룹 회원 경제금고로 29개의 경제금고가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공무원 노조 경제금고, 경찰노조 경제금고, 연대경제금고 등이 있다.
 

이상으로 퀘벡 사회적경제 발전과정에서 농업협동조합, 공제회, 신용협동조합이 시작하게 된 맥락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농업 협동조합과 공제회가 사업상 협동의 필요성에 기반하여 협동조합 운동을 받아들인 형태라고 한다면, 주민금고, 경제금고를 포함한 신용협동조합 운동은 저소득 계층을 위한 금융서비스의 부재라고 하는 실질적인 필요와 함께 산업혁명 이후 심각해진 빈곤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 등 조직 단위에서 조직할 수 있는 신용협동조합인 경제금고의 설립과 발전과정을 볼 때 그런 점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 금융기관이 된 데자르뎅 그룹이나, 라 콥 페데레를 비롯한 농업 협동조합, 프로뮤뛰엘을 비롯한 공제회 등 협동조합들의 양적 성장 및 저변 확장은 오늘날의 혁신적인 사회적경제 모델로서의 퀘벡 모델의 바탕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를 다루면서, 특별히 종전에 잘 알려지 않았던 경제금고들의 역사를 소개했다. 최근 여러가지 이유로 사회적경제 공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노동조합 단위의 신협으로 출발하여 오늘날에는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 조직들까지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대경제금고의 사례는 한국 사회적경제 공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대경제금고의 사례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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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 (사회적경제 국제교류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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