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금융, 새로운 시대의 금융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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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금융, 새로운 시대의 금융 정의
[굿, 파이낸스 ②] 금융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는 일, 지속가능성 UP!
  • 2019.10.16 14:01
  • by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가을야구’가 활짝 핀 계절이다. 야구를 좋아하든 아니든, 응원팀이 있든 아니든, 이맘때 야구는 정규시즌과 다른 묘미가 있다. 야구와 함께 차가워지는 가을밤 공기를 즐기는 팬으로서 야구의 숱한 매력 중 일부를 들어보자. 

우선, 야구는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공 아닌 사람이 홈에 들어와야 점수가 난다. 인간적이다. 둘째, 다른 스포츠의 시간제한과 달리 야구는 스물일곱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까지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가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야구에는 순환의 운동성이 있다. 미국 문학·스포츠 학자인 앨런 거트만이 말했다. “다른 스포츠의 직선과 대비해 1회부터 9회까지 순환적이며, 공을 때린 뒤에는 루에서 루를 달리며 한 바퀴 원을 그리는데 직선과 원은 역사와 신화의 가장 오래된 상징이다.” 이러니,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머니볼’의 대사)
 

영화<머니볼>, 브래드 피트가 맡은 ‘빌리 빈’의 대사 ⓒ 영화 '머니볼' 캡쳐


순환하는 금융의 힘, Circle of Finance

순환을 향한 야구의 달음박질처럼 사회적금융은 돈의 순환이 우선이다. 돈이 필요한 곳에 흘러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대부업 흔적이 남아있으나 현대적 의미를 지닌 금융업은 11세기 이탈리아에서 밑거름을 뿌렸다. 유대인들이 벤치(탁자)를 뜻하는 ‘방코’(banco)에서 돈을 빌려줬다. 방카(banca), 즉 은행(bank)의 시초였다. 이후 예금자들이 돈을 맡기고 증서를 받는 예금업무도 이뤄졌다. 간혹 방카에 돈이 없어서 예금자들이 돈을 받지 못하면 탁자를 부쉈다. ‘파산(bankruptcy)’은 그렇게 ‘부서진 탁자(bankorotto)’에서 나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 점토판에는 소지한 사람이 추수때 얼마만큼의 보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지 새겨져 있는 등 오늘날로 따지면 일종의 '어음'이나 '채권'의 기능을 수행했다.


이처럼 금융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옮겨가면서(순환하면서) 돌아갔다. 상업은행 시스템 형성의 주역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빅터 로스차일드의 말을 살펴보자. “은행업의 본질은 돈이 있는 A지점에서 돈이 필요한 B지점으로 원활히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업자는 이 과정에서 생긴 차익으로 사업을 영위했다.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처럼 ‘돈의 순환(Circle of Finance)’은 금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역사의 가장 오래된 상징이 금융에도 깃들어 있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유기체를 살리는 힘이 금융에 있었다.

이렇게 살리는 반면 죽일 수도 있는 것이 금융이었다. 우리는 금융이 배반한 역사를 안다. 포스의 어두운 면에 유혹당한 제다이 기사가 다스베이더로 변한 것처럼, 돈의 검은 포스가 금융을 덮쳤다. 금융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필요한 곳에 돈을 순환하지 않고 축적을 위해 검을 휘둘러댔다. 더 많은 순환이 아니라 더 큰 수익과 단기 실적에 매달렸다. 

금융시스템은 특히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에 의존하면서 공공성을 놓쳤다. 공적 기능을 수행하던 금융기관은 이윤과 주주가치에 더 힘을 쏟았고 공공재 성격을 띠던 금융 서비스는 돈이 많거나 잘 갚을 것 같아야 혜택을 줬다. 대출, 금리, 투자 등 모두 그랬다. 사회를 위한 경기 방어 기능도 소홀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돈을 풀어 순환을 촉진해야 했건만 되레 대출금을 회수했다. 돈줄을 막으니 경기는 악순환에 빠졌다. 금융은 돈의 순환이라는 사명을 잊고 비대해졌다. 다른 산업과 가계는 금융의 하인이 됐다. 하인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금융이라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녔다. 생태계가 무너졌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금융이 그러다 펑, 하고 터졌다. 세계 금융위기였다.

순환은 생명을 연결하고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한다. ‘Circle of Lives(생명의 순환)’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돼지는 열량 높은 고단백 사료를 먹이면 체중이 빨리 늘고 큰다. 비만이 된 돼지는 사료 회사나 축산업자에게는 이윤을 낳는 상품이지만, 먹는 사람에겐 좋지 않다. 비만 돼지에서 나온 퇴비는 작물 발아도 힘겹게 한다.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다. 가축 - 사료 - 가축의 배설물 - 땅 - 작물 - 사람은 연결된 고리다. 하나가 틀어지면 생명의 순환도 어그러지고, 하나가 온전하면 나머지도 온전하다. 금융이라고 다르지 않다.

순환을 잊은 금융을 일깨우고, 돈벌이에 급급한 금융에 대한 반성에서 사회적금융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아울러 현행 금융시스템 작동방식에 균열을 가하는 투구를 조금씩 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다양한 임팩트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면서 그동안 기존 금융시스템이 외면한 사회적 가치를 타석에 세우고 있다. 아직 승리 여부는 모르지만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이 전개되고 있다. 성장과 이윤을 넘어 사회, 경제, 환경 요소를 담은 지속가능발전 프로젝트에 필요한 돈을 원활하게 공급하자는 ‘그린 양적완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융 패러다임 리빌딩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강제 리빌딩도 필요하다. 시민의 민주적인 통제와 힘으로 말이다.
 

한국 사회적금융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활성화시키고 있는 사회가치연대기금은 올해 1월 출범했다. ⓒ사회가치연대기금


사회적금융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시금석

사회적금융을 자선이나 기부로 오해하는 시선이 있다. 금융이라는 수단을 통한 사회적 가치 달성이라는 목표로 가진 사회적금융은 원금 회수와 적정한 수익이 필요하다. 사회적금융이 일반 금융업과 다른 점은 재무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공 하나에 두 명을 잡는 ‘더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금융회사와 다른 논리 구조와 가치를 가진 것이 사회적금융기관이다. ‘사회적 재무 성과’를 함께 판단하는 새로운 금융의 가능성은 돈이 필요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업이나 활동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금융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의 핵심이자 혈관이다.

지금 우리는 태어난 집안의 배경을 대물림하고, 불평등이 삶의 기반과 존엄을 위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학교나 가정, 회사 어디서든 공공성의 가치를 전파하고 확산하지 못한다. 때문에 금융이 공공성을 잃고 실책성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꾸짖는다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각인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인류세 최고 메가트렌드를 맞이하고 있다. 거대한 위기이자 기회다. 금융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사회, 경제, 환경이 조화를 이룬 지속가능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지속가능금융, 기후금융, 녹색금융, 임팩트금융 등의 사회적금융은 빠른 속도로 국제금융질서에 들어가 새로운 시대의 금융정의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엄동설한에서도 우리에겐 새로운 세상을 꿈꾼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가 그랬다. 독립군 양성기관이었지만 군사기술만 배우지 않았다. 역사와 세계정세를 공부하고 ‘왜 독립해야 하는지’를 마음 깊이 박았다. 일본을 넘어 독립한 조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꿈꿨다. 그것을 위해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면서 작은 것부터 행동에 옮겼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잘 알다시피, 금융은 힘이 세다. 다크 포스에 잠식당한 금융을 구하는 일은 지구를 구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기존 금융시스템을 끝내고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지역사회와 주민을 위한 프로젝트와 사업에 자금줄 역할을 하는 공공은행(Public Bank) 설립 운동이 꿈틀대고 있다. 금융이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기인한 것이다. 사회적금융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금융이 한발씩 내딛는 실천이다. 주문을 외운다. 하쿠나마타타(문제없어,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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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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