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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③] 나나이(어머니)의 꿈

기사승인 2020.01.23  1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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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뜩 나나이들의 꿈이 궁금해졌다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얼마 전, 카이나(KAINA)에서 일하는 막내 나나이 '마리테스'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봉사자들은 그녀를 위한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가능한 맛있는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베이커리를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숫자 초 '6'이 마침 품절이었다. 이곳에선 상점의 규모나 물건의 종류와 상관없이 충분한 재고가 없는 일이 매우 흔하다. 그래도 생일케이크에 초를 빠트릴 수는 없으니 숫자 '6'대신 비슷한 모양의 '0'을 구입했다. '마리테스'에게는 그녀의 나이보다 한참 어린 숫자 초를 꽂은 이유를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농담을 섞어 설명했다. "실제 나이가 몇 살이든 삼십대의 생일이니 숫자 '30'이면 충분하다, 당신은 여전히 젊고 예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니 평소 감정표현에 서툴렀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무척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삼십대 중반인 '마리테스'는 이미 네 아이의 엄마이며 가장이다.

▲ 서른여섯 번째 생일에 파견학생들로부터 케이크를 선물 받은 나나이 '마리테스'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날들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젊고 예쁜 나이지만 네 아이의 엄마로서 지고 있는 무게가 적지 않아 늘 피곤해하는 모습이 종종 안타까웠는데, 이 날 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는 모습에 깜짝 파티를 준비한 학생들이 그녀보다 더 기뻐하는 듯했다. ⓒ카이나

"여가시간에는 주로 집안일을 해요"

'마리테스'의 생일에 보았던 밝은 웃음과는 달리, 평상시의 나나이들은 종종 무기력해 보인다. 혹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있으려나 싶어 나나이들에게 여가 시간에는 보통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마리테스'는 텃밭에 물을 주는 것이 유일한 여가생활이라고 했다. 그녀가 파견학생들의 또래였을 땐 친구들과 자주 운동을 즐겼다고 한다. 특히 농구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보통 집안일을 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피곤해서 잔다고 덧붙였다. '마리테스'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아미'는 빨래를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를 넷이나 키우는 워킹맘의 여가시간이 밀린 집안일로 연결되는 것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차 싶어 그럼 취미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아미'는 노래를 듣는다고 대답했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청소나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취미라고 대답은 했지만 아마도 '아미' 또한 노래를 듣는 시간은 곧 집안일을 하는 시간일 것 같았다. "혹시 빨래하면서 노래를 듣는 것이 취미예요?"라고 묻자 '아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이들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면 이렇게 그 대답은 한 결 같이 가족이나 가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곤 했다. 문뜩 나나이들의 꿈이 궁금해졌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해도 아직 충분히 젊은 나나이들에게 분명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닐 것 같았다. 몇몇 나나이들과 또래이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필자가 보기엔 특히나 그랬다. 하지만 역시나 나나이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꿈은 자녀들이 모두 학업을 마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필리핀에서 학업을 마친다는 것은 대학교까지 졸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그들의 꿈이자 희망은 여지없이 자녀들을 향하고 있었다.

다시 자녀들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해본다면, 혹은 자녀들이 생기기 이전에는 어떤 것을 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마리테스'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렸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굳이 생각하자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필리핀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안정적이거나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영어는 우대사항이 아닌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아미'는 본인도 학업을 마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며 자녀들이 우선 학업을 마치면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저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아미'에게 특별히 하고 싶었던 일은 없냐고 묻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안정(stable)'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그런 것은 딱히 없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는 나나이들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또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조차 자연스레 잊게 만들었지만, 나나이들은 적어도 바로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종종 아이의 학교를 가봐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조퇴나 결근을 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그것을 단순히 불성실함, 또는 노동규율의 부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나이들을 깊이 있게 알아갈수록 그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나나이들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만큼이나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중요했다. 

사실 젊은 나나이들 중 일부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카이나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2호점의 '아미'는 카이나로 오기 전 옷 수선 일을 했고 '마리테스'는 미용 기술을 배웠지만,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이들이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야만 했다. '아미'와 '마리테스'에게는 아직 어린 자녀가 각각 4명이나 있다. 그들이 조금이나마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을 그만둔 이유는 12시간 이상을 내리 일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나이들은 적은 급여라도 일정한 수입만 있다면 생계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휴식이 보장되는 카이나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나나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꿈이자 삶의 이유는 늘 가족들로 향한다. ⓒ카이나

나나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필리핀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대안으로써의 일자리를 만들고 그 수를 확장하고자 하는 '카이나'프로젝트는 한류를 활용한 소셜비즈니스라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는 자녀들의 미래와 소중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터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나이들의 희망이 그저 잠깐의 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 또한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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