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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도 없는데 교구가 어디 있겠어요"

기사승인 2020.02.04  13: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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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소셜벤처 기행 ⑪] 교구를 통해 아동의 기초 학습을 돕는 '아디스 디벨롭먼트 비전'

필자가 서아프리카의 카메룬에서 해외봉사단원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활동 1년 차쯤 되었을 때 같은 지역에 신규 단원이 부임했다. 한국에서도 수학 교사였다던 그녀의 활동 기관은 지역의 공립 초등학교였다. 활동 기관의 교장 선생님과 활동 계획에 대해 협의하며 기대감과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단원이었다.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배정받고 나서 그녀가 첫 수업에 들어갔던 날이었다. 근무 시간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 오늘 꼭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다며.

만나자마자 그녀가 쏟아냈던 이야기는 카메룬 초등 교육의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교탁 위엔 낡은 교과서 한 권이 펴져 있고 학생들의 책상에는 교과서가 없더란다. 연필과 공책이 있는 학생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것이고, 그 조차 없는 학생들도 있어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수업을 해야 할지 멘붕(!)이었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다른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칠판에 써서 설명하면 학생들이 받아 적으면서 공부한다고 설명했다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이후 몇 번 수업을 하고 퇴근했는데, 앞으로 이렇게 2년간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 카메룬 초등학교의 수업 모습. 필자가 활동했던 마을의 학교인데, 본디 교회 건물인 것을 주중에는 학교로 쓰고 있다. 공책이 있는 학생들은 필기를 하고, 공책이 없는 학생들은 듣기만 한다. ⓒ엄소희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겪는 문제다. 아동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학교를 짓는다. 학교를 지었더니 교사가 없다. 비숙련 교사라도 발굴하여 훈련하고 교사를 확충했더니 이번에는 학생들이 쓸 교재가 없다. 이 뿐인가. 학교 내 화장실 등 위생시설, 점심 식사, 통학 안전, 아동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는 부모 등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보편적 교육의 제공은 정부의 역할로 여겨지지만, 재정과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모든 것을 정부가 일임하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서 이 빈 부분을 국제기구와 NGO, 사회적기업들이 참여하여 간극을 메우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려 하는 사회적기업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디벨롭먼트 비전(Addis Development Vision, 이하 ADV)'이다. 이 기관은 1993년 아동과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 기관으로 설립되었는데, 현재는 제조 부서를 강화하여 에티오피아의 전역에 학교용 가구와 교구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고객은 국제개발NGO들이다. 교육 분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NGO에서 학교를 짓고, 교사를 확충한 뒤, 교육의 품질을 높이고 학습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교구 및 설비를 구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것을 제작해서 납품할 업체가 전무했다고 한다. 기존에 NGO였던 ADV에서 장애인 훈련 및 소득 창출의 방법으로 교구 제작 비즈니스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1년치 주문이 밀려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어오고 있다.

▲ ADV 제조 시설에서 교구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 속의 여성은 청각 장애인인데 취약계층을 고용하여 교구 및 교육용 가구를 제작한다. ⓒ엄소희
▲ ADV 교구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World Education Blog

지난해 에티오피아에 사회적기업월드포럼 참석 차 방문했다가 코이카 측의 주선으로 이 기관을 만나게 되었는데, 기관을 방문하고 나서 이들을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많은 구매를 하는 곳이 세이브더칠드런과 플랜 인터내셔널 등 개발NGO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서 세이브더칠드런에 재직하던 당시 수없이 봤던 에티오피아 현장 사진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아동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교구를 현지에서 제작하여 수업에 활용했습니다'라고 소개했던 것이 바로 이 ADV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 ADV에서 제작한 교구를 활용해 수업을 하는 모습 ⓒ세이브더칠드런 해외결연 에티오피아 서부 쇼와 사업장 자립보고서

솔직히 이야기하면, 당시에 에티오피아에서 전달해준 사진과 결과 보고서를 보며 '후원금을 가지고 확충할 수 있는 교구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못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눈으로 보면 교구의 퀄리티도 낮고, 기능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내오는 보고서를 보면 이 단순한 교구들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명백하다. 아동들은 교구 활용을 통해 학습을 더욱 즐겁게 하고, 숫자나 문자에 대한 이해도 수월하게 한다. ADV를 방문하고 나서 과거에 교구의 질을 운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현지에서 제작 가능한 수준으로, 적정한 기능에 집중하여, 더 많은 학교에 보급하는 형태로 교구가 개발되고, 제작되어왔던 것이다.

ADV와 국제개발NGO, 정부 간의 협업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첫 번째는 정부가 수행하지 못하는 교육 서비스를 NGO에서 채워주고, NGO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사회적기업이 채우면서 함께 에티오피아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협업했을 때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좋은 사례이다.

▲ ADV의 교구 설명서. 교구를 처음 접하는 교사들도 교구를 잘 쓸 수 있도록 활용 설명서를 제작해서 교구 활용 워크숍을 열고 있다. ⓒ엄소희

두 번째는 현지의 수준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이다. 현지 사회적기업이고, 비전과 미션이 명확한 기관이었기에 적정 기능, 적정 가격의 제품을 개발했고 빠른 확산이 가능했다. 취약계층의 고용을 위한 기관이면서, 취약계층 신규 인력이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수준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였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기술 훈련과 제작이 가능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적정한 가격과 빠른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양쪽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도 교육 분야의 사회적기업은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 ADV는 신기술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목적과 임팩트에 집중한 비즈니스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에 ADV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기금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교구뿐 아니라 놀이터에 설치할 놀이기구 제작까지 나아가 보겠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전국의 학교에서 ADV의 제품을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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