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버려지는 회화작품, 단 하나뿐인 가방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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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현장] 버려지는 회화작품, 단 하나뿐인 가방되다
(주)옴니아트 이성동 대표 인터뷰
  • 2020.02.13 08:00
  • by 전윤서 기자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같은 작품이에요. 버리지도 못하고 작업실 한 켠에서 먼지만 쌓이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죠" 2019년 미술대학을 졸업한 Y씨는 이렇게 자신의 작품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2014년 발표된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에 따르면 순수미술을 전공한 미술대학 졸업생은 매년 3,2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매년 배출하는 졸업작품과 전시되지 못 한 습작(習作)은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덩어리가 되기 일수이다.  

■ 작가들이 그린 예쁜 그림들,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요

오래된 주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나무계단이 인상적인 주택 하나가 보인다. 오래된 주택을 업사이클링(up-cycling)한 공간은 (주)옴니아트가 운영하는 브랜드 '얼킨(ul:kin)'의 아뜰리에이다. 곳곳에는 작가들의 습작들이 쌓아져 있고 한 켠에는 그 작품들을 이용해 만든 얼킨의 가방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뜰리에의 모양새처럼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얼킨. 이곳의 디자이너이자 옴니아트의 수장인 이성동 대표를 만나보았다.

▲ (주)옴니아트 이성동 대표와 얼킨의 업사이클링 가방 ⓒ이성동 대표

얼킨의 이성동 대표는 대학교 재학시절 우연히 들른 졸업전시에서 전시되는 작품 이외에 버려지는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이를 활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본래 디자이너다 보니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을 보았고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얼킨을 만들게 된 계기를 전했다.

 

■ 윤리적패션은? "얽히고설킨 선순환"

2014년 설립된 얼킨은 '얽히고설킨'이라는 의미와 'Ultimately We Are Kin(결국 우리는 하나다)'이라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포함돼 있다. 그 뜻처럼 얼킨의 세계는 하나의 고리(chain)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을 통해 얻는 수입은 2018년 평균 1,281만 원이다. 미술영역에서만 보자면 그 평균은 더 낮아진 868.8만 원이다. 이 대표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열악한 창작환경을 돕고 더불어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일반 브랜드와 얼킨의 차이는 바로 얼킨만의 철학이 깃들어 있는 '재능순환프로세스'에 있다.

▲ 얼킨의 '재능순환프로세스' 구조 ⓒ얼킨

얼킨은 신진작가 또는 학생작가들의 버려지는 회화작업을 수거하거나 구매해 "하나뿐인" 가방, 지갑, 의류 등 패션 전반의 제품으로 탄생시킨다. 전시장이 아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품은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문다. 판매된 수익금의 일부는 작가에게 새 캔버스를 후원하거나 전시를 개최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선순환은 신진작가 발굴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며 버려지거나 소각되는 작품도 막을 수 있어 환경보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얼킨의 선순환 구조에는 매년 스무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콰야, 김선우, 정지윤, 김지윤, 김소정, 율, 김태국, 현피치 등 참여 예술가와 얼킨은 서로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 얼킨, 사회적경제와 만나다

얼킨의 재능순환프로세스는 사회적경제와 맞닿아 있었다. 이 대표는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에 들어서게 됐죠"라며 2년 전을 떠올렸다. 2018년 참가한 IBK소셜벤처지원사업에서 1등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계기로 사회연대기금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에는 문화체육관광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대표는 "트렌드에 맞춘 옷을 생산하면 소비자들이 많이 사겠죠. 하지만 브랜드의 존재가치가 먼저였어요"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 예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파는 기업과 소셜임팩트를 만들어가는 사회적기업과는 고민이 다르다. 소비자들을 으레 저렴한 제품을 소비한다.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사회적기업의 경우에 이러한 측면에서 소비자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이 대표는 기업이 생산해내는 사회적 가치를 같이 따라줄 수 있는 소비자를 구축하려면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만의 색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얼킨은 특유의 '재능순환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어 흔히 소비자들이 말하는 가성비를 고려하기 힘들다. 대신에 가성비를 뛰어넘는 디자인과 가치를 전달해 윤리적패션, 윤리적소비에 동참시키고자 한다"며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 버려지는 작가들의 수작으로 만들어진 얼킨의 가방과 파우치 ⓒ얼킨

■ 사회적기업의 좋은 사례들, 거대한 움직임으로…

윤리적패션을 지향하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보람을 느낀다는 이 대표는 태국에서 얼킨을 그대로 모방한 카피브랜드가 발생했을 때에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소셜미션을 이뤘다고 하는 기준이 브랜드가 없어도 되는 상황"이라며 "태국에서도 예술가들의 선순환에 애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순환에 앞장서는 브랜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얼킨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3년 기간동안 소재개발, 기부, 선순환 시스템을 통해 지속가능성 6~70퍼센트 상승을 목표로 한다. 또한 매월 신상품을 만나볼 수 있는 스트리밍웨어 구독 서비스와 더불어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아트상품을 제작할 수 있는 어플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 얼킨이 일으킬 나비효과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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