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아이가행복한' 유치원이 "모두가 행복한 곳"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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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현장] '아이가행복한' 유치원이 "모두가 행복한 곳"인 이유
공동육아와 사회적경제②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장성훈 이사장 인터뷰
  • 2020.02.25 10:44
  • by 노윤정 기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다. 아이들을 보며 흔히 하는 '한창 뛰어놀 나이'라는 표현처럼, 아이들은 마을과 자연에서 뛰어놀며 자라야 한다. 그러면서 주변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고 있을까? 개인화되고 이웃과 단절된 지역사회와 등수 매기기에 열을 올리는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너'와 '내'가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18년 일부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사립유치원의 파행적 운영이 공분을 자아내고 우리 사회의 보육과 교육 문제가 다시 한번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가운데 '공동육아'가 대안적 육아·돌봄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부모들이 직접 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공동육아는 어떤 형태의 돌봄을 제공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라이프인이 지역사회에서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라이프인

주말 오전 시간. 한창 개원 준비 중인 유치원 안쪽에서 아이들이 시끌벅적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행복한 유치원' 개원을 앞둔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들이 회의하는 사이 아이들은 유치원 안에서 부모와, 혹은 친구와, 혹은 친구의 부모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쉴 새 없이 아이들이 웃음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걸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답이었으니까.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장성훈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정말 좋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황금 같은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모여 회의를 하고 있음에도 부모들의 얼굴 역시 미소가 한가득하다. 개원을 앞두고는 퇴근 이후와 주말에도 모여 유치원 일을 논의하고 있지만 지친 기색보다 기대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 장성훈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라이프인

■ 사립유치원 비리, 아이를 믿고 보낼 곳이 필요했다

'우리가 직접 유치원을 설립하자'

시작은 지난 2018년 10월 전국을 뒤흔든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였다. 유치원 원장이 유치원 운영비로 개인 소유의 외제차 리스 비용, 자동차 보험료, 아파트 관리비, 주점 유흥비 등을 지출한 회계 비리가 드러난 것이다. 장 이사장이 거주하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도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이 적발됐다. 특히 장 이사장을 분노하게 만든 부분은 아이들에게 부실하고 기본적인 위생·안전도 지키지 않은 음식을 먹였다는 점이었다. 분개한 동탄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했고, 이때 장 이사장이 대표를 맡았다.

이와 비슷한 시기(2018년 11월) 교육부에서는 학부모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이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운영 규정'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해당 법의 시행 소식을 들은 장 이사장은 직접 유치원을 세워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벌써 15개월 전. 사회적협동조합은 물론 유치원 운영, 유아교육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부모들이 모여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 함께 공부한 지 1년여 만에 협동조합형 유치원 설립을 이루어냈다.

유치원은 부모들이 행정이나 회계 등의 업무를 맡고 교사들이 교육을 전임하며, 정교사를 제외한 보조교사나 조리실 직원 등의 자리에 조합원이 참여해서 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조합 이사회는 2년 단위로 구성되고, 예비 이사회 제도를 두어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도록 했다.

아이가행복한 유치원 운영 방침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바로 비전이다.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학부모들은 이 유치원을 '누구나 다니고 싶고 일하고 싶은 유치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비전으로 삼았다. 어떤 아이라도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인 동시에 어떤 교사라도 이 안에서 일하고 싶은 유치원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교사들의 처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장 이사장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할 당시 가장 많이 받았던 제보 중 하나는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복지에 대한 문제였다. 교사들이 너무 힘든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경력이 걸려 있으니 문제를 제기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심란했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인데. 그리고 사회 초년생들도 많은데. 그래서 우리는 교사들에 대한 복지와 처우를 잘해주자, 그분들이 나가기 싫을 정도로 잘해주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비상대책위원회 때 (비리가 적발된) 16개 유치원에서 작성한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예·결산서를 모두 살펴봤다"며 "소위 '돈 새는 부분들'을 다 제하고 나니까 우리는 원비도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아이들이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도 충분히 다 누리게 해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라이프인

■ 모두가 행복한 유치원

부모들이 직접 유치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조합과 유치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 부분은 바로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모든 조합원의 의견을 합치시키는 일이었다. 장 이사장은 조합의 일을 "구성원이 60명이면 60개의 입이 있고 60마디가 왔다 갔다 한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더구나 전문적으로 유치원 운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주변의 시선에도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조합원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조합원을 받을 때 우리가 마련하고 있는 지침, 교사와 부모가 평등한 입장에서 함께 유치원을 만들어나가는 관계라는 점에 동의해야 조합에서 함께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적어도 한두 번씩은 유치원 일이 직접 참여해서 내 아이가 있는 유치원에 몸 부대끼고 살자는 점도 강조했다. 물론 그럼에도 조합과 유치원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다른 말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공동육아와 사회적협동조합 교육도 준비했다. 우리는 완벽한 유치원이 아니고 완벽한 부모들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여서 계속 의논하면서 함께 배우고 길을 찾아가려고 한다"

이처럼 장 이사장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사람 사이의 관계다. 장 이사장은 협동조합형 유치원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점 역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는 것"이라며 "사람 사이에 관계 형성을 잘해야 한다. 유치원 설립과 운영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의 총합을 100으로 본다면 90이 '관계'다. 그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또한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가지는 가치를 '평등'으로 꼽으며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고 교사, 원장, 학부모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이 유치원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운영되던 다른 유치원들은 대개 교사와 원장이 중심이고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여기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나 또한 이사장이라고 해서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의견 나눠 달라, 결정해 달라'라고 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만드는 역할이다. 여기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직접 설립한 유치원. 그것은 단순히 부모들이 함께 조직을 꾸리고 자금을 모으고 공간을 마련해 유치원을 세웠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안에서 부모들은 수업에도 참관해 보고, 교사도 되어 보고, 함께 몸을 부대끼며 모든 과정을 함께하게 된다. 정규과정(누리과정)은 다른 유치원과 동일하게 진행하되 '우리의 아이를 공동체적 방식으로 함께 키우자'는 공동육아 정신을 가져왔다. 그렇기에 아이가행복한 유치원 안에서 아이가 쌓는 추억은 아이만의 추억이 아니라 한 가족, 나아가 구성원 모두의 추억이 된다. 그래서일까. 장 이사장은 아이가행복한 유치원을 "모두가 행복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참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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