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⑧] 자조모임을 통한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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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⑧] 자조모임을 통한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향상
  • 2024.05.01 12:00
  • by 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1980년 남인도 케랄라 산악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젊은 가톨릭 신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관행농법의 폐해와 산업화된 대규모 농식품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고 있다. PDS가 위치한 서고츠(Western Ghats)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며,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고대부터 후추, 카다멈, 생강, 강황 등 향신료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들은 쉽지 않은 유기농법 전환과 인증 및 모니터링 체계, 전체 가치사슬의 규모화와 전문화, 혁신적인 리더십, 선진국 소비자단체들과의 공정무역, 장기적인 파트너십 등을 쌓아왔다.
본 기획기사는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해온 두 명의 연구자가 인도 최남단 케랄라 지역을 방문하고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2022년 6월~23년 7월).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향신료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여러 도전과제 및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도전해 온 노력의 흔적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전 세계인의 과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케랄라의 향신료 농부들과 같은 농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이해와 공감,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여성의 빈곤율이 남성에 비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Statista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인도 최빈층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18%나 더 많다. 인도 PDS는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들의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업으로 자조모임(Self-Help Group, SHG) 프로젝트가 있다. 

"인도와 케랄라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입니다. 가정에서 경제적인 의사결정은 남성이 주도합니다. 자조모임은 스스로를 돕는다는 의미로, 여성 평등을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자조모임에 함께하는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죠. PDS는 독일 단체의 지원을 받아서 대출 지원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소득 창출 기회를 만들어왔습니다." <PDS 전무이사 질슨(Jilson) 신부>

■ 여성들의 금융 접근성 강화 

자조모임(Self-Help Group, SHG)은 1972년 여성자조협회(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SEWA)로부터 시작되어, 인도 전역에 약 800만 개, 케랄라에는 약 이십오만 육천 개의 자조모임이 있다(Ministry of Rural Development 홈페이지). 여성자조협회는 직조공, 도예가 등 빈곤층 자영업 여성 노동자의 소득 증대를 목표로 조직화를 시작하였다. 10~20명 사이의 마을 사람들이 하나의 자조모임을 결성, 대부분 같은 동네 사람들로 1~2킬로미터 거리에 산다. 자조모임은 NGO, 정부, 은행, 소액 금융기관 등의 지원을 받는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모임이다. 여성들은 모임에서 함께 저축하고, 저리로 돈을 빌려준다. 이자 수입은 함께 나눠 추가 소득의 기회가 된다. 자조모임은 정기적으로 모이면서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하는 경우, 복잡한 서류 절차 없이 주정부의 보증하에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 
PDS가 지원하는 자조모임의 여성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조모임 참여를 통해 경제력이 향상되었다고 증언했다. 참여자들 모두 자신 명의의 은행 계좌가 있고 남편 명의의 땅이 있다고 했다. 간혹 부부 공동 명의도 있었다. 자조모임에 참여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물어보니, 그녀들은 엄지손가락을 보여주며 '지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서명이 생긴 것, 남편 중심의 가족문화이긴 하지만 자신의 소득 발생 후 집안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 등을 말한다.

■ 체계적인 조직화를 통한 자조모임 활성화

PDS는 1996년부터 자조모임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22년 3월 31일 현재 이두키, 코타얌, 파타남티타 3개 지구에서 2142개의 자조모임과 함께하고 있다(PDS Annual Report 2021-2022). PDS는 자조모임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 체계를 구성하여 운영한다. 2142개의 개별 자조모임은 70개의 연맹에 속한다. 70개의 연맹은 10개의 지역 모임에 속하는 구조를 갖는다. 70개의 연맹에는 연맹당 한 명의 애니메이터가 있고, 그 애니메이터들이 모여서 지역 모임을 하는 구조다. PDS는 지역 모임당 한 명의 담당 직원을 두고 있다. 연맹은 한 달에 한번 모여 회의한다. PDS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자금이 필요한 자조모임에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개별 자조모임-연맹-지역의 3단계 소통 구조 체계를 갖추며 단계별 모인 의견과 제안을 소통한다. PDS에서 지원하는 자조모임은 성별을 분리해서 모임을 진행한다. 여성들은 낮에, 남성들은 귀가 후에 모인다. 

▲ 자조모임 조직 체계.
▲ 자조모임 조직 체계.

■ 왜 PDS가 지원하는 자조모임에 참여하는가?

2023년 1월 23일 현지 조사를 온 지 4일 차 되는 날 쿠리수마타이(Kurisumattai) 지역의 15개 자조모임 대표들이 모이는 연맹 회의에 참석했다. 자조모임은 종교적 차별 없이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들은 한 달간 일어난 일을 정리한 보고서를 공유한다.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NGO가 다양한데 왜 이들은 PDS가 지원하는 자조모임에 참여하는지 물어보았다. 첫째, 다른 어떤 지원기관보다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준다. 둘째, 자조모임, 연맹, 지역 모임까지 체계가 잡혀있고 PDS의 코디네이터가 이러한 체계가 작동하도록 역할을 한다. 셋째, 경제 활동 참여 기회를 제공하며, 넷째 다양한 훈련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지원하는 물 관련 정비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고, 바로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 지역모임 회의.
▲ 지역모임 회의.

최상위 연합인 두 개의 지역 모임 또한 참관했다. 17개 연맹의 담당 애니메이터가 모여서 한 시간가량 회의를 진행했다. 연맹의 애니메이터는 자조모임과 PDS 사이의 브릿지 역할을 한다. 지역 모임 또한 한 달에 한 번 회의하는데, 주요 사항을 보고하고 함께 토론한다. 우리는 왜 이 애니메이터들이 PDS와 제휴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PDS가 신뢰를 주고, 투명하며,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하는데 특히 리더십을 개발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참여 이유라고 설명했다. 

■ 여성의 리더십 향상과 새로운 지위 

자조모임은 여성들의 공적 영역의 진출을 가능하게 한다. PDS 자조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케랄라 최소 선거 단위 판자야트 그람 사바에 당선된 여성 두 명을 만났다. 이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주정부, NGO 등의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면서 리더십이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케랄라의 심층 민주주의 방식에 주목하는 캐나다 협동조합 운동가 존 레스타키스는 그의 책 『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서 자조모임의 의미를 정리한다. 여성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공적 삶으로 진출한다. 많은 여성이 가정 울타리 밖을 나가본 적이 없고, 대부분은 사회집단에 속해 본 적이 없는데 자조모임을 통해 독립 소득자로서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되고, 이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그들의 지위를 새롭게 위치짖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한다. 
 

▲ 지역모임에 참여한 애니메이터와 PDS 직원들.
▲ 지역모임에 참여한 애니메이터와 PDS 직원들.

자조모임의 가장 상위 모임인 지역 모임에는 반드시 PDS의 전무이사가 참석한다. 그는 애니메이터의 발표를 듣고 의견을 제시하며 함께 토론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니어 그룹들이 주로 참여하는 지역모임에도 참여했다. 이 모임의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이 20년에서 30년 가까이 PDS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모든 여성이 깔끔하고 화려한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왔길래, 오늘 이 모임을 위해서 특별히 차려입은 것인지 평상시에도 늘 이렇게 입고 있는지를 물었다. 약간 긴장한 분위기에서 그 질문을 받자마자 다들 환하게 웃으면서 너나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출할 때 사리를 입는다고 한다. 이 여성들은 자조모임활동 경력이 길어서 인지 대부분 자기 명의의 땅이 있다고 했다. 

■ 추가 소득 창출 기회 

자조모임을 기반으로 다양한 경제활동 및 훈련 기회도 얻는다. 현지조사 중에 자연보호구역 안에 있어서 일반 여행자들은 입장이 불가능한 케랄라 산악부족 마을을 방문했다. 숲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공무원이 검사한다. 케랄라에서도 산악부족 마을은 가난한 지역 중 하나다. 2021년부터 PDS는 이 마을에 있는 2개의 자조모임 여성들과 빗자루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베티버(vetiver)라는 천연 식물을 건조하여 빗자루를 만드는데, 모임에 참여 중인 한 여성은 작년에 빗자루 3,000개를 만들어 약 10만5천 루피(약 160만 원)의 추가 소득을 얻었다고 한다. 현지 조사 당시 농부들의 가구 소득이 10만 루피(약 150만 원)에서 20만 루피(약 300만 원) 사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빗자루 제작을 통한 소득은 가정 경제에 꽤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PDS는 현재 매달 500~600개의 빗자루를 판매하고 있는데 더 많은 여성들을 훈련하여 생산량을 늘리고, 공공조달 등을 통해 판매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빗자루를 생산하여 추가 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숲속 마을 자조모임 여성들.
▲ 빗자루를 생산하여 추가 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숲속 마을 자조모임 여성들.

빗자루 제작은 천연 식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빗자루를 대체할 환경적 가치도 있다. 베티버라는 식물의 깊은 뿌리가 토양 침식을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PDS에서는 농부들에게 베티버를 심도록 권장한다. 그리고 이것을 수확해서 빗자루나 바구니 재료로 활용한다. 케랄라에서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최소화하고 일상에서 자연 유래 식물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식물을 활용한 빗자루도 그 예 중의 하나다. 
PDS는 자조모임을 기반으로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다차원적 접근을 하고 있었다. 교육 및 기술 훈련, 저축 장려 및 저리의 소액 대출 기회 제공, 제품 개발 및 판매를 통한 추가 소득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 물과 도로 정비 등 필수 인프라를 개선하여 여성의 노동 부담을 줄이고 소득 창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자조모임을 통해 의사결정 참여 기회를 높이고, 리더십을 육성한다. 이러한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부, 기업, 해외 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왔으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 발전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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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협동조합경영학 박사, 주로 협동조합,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의 제도 변화 및 발전 과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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