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⑤] 말라바르 향신료로 풍부한 케랄라 음식
상태바
[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⑤] 말라바르 향신료로 풍부한 케랄라 음식
  • 2024.04.10 12:00
  • by 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1980년 남인도 케랄라 산악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젊은 가톨릭 신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관행농법의 폐해와 산업화된 대규모 농식품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고 있다. PDS가 위치한 서고츠(Western Ghats)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며,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고대부터 후추, 카다멈, 생강, 강황 등 향신료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들은 쉽지 않은 유기농법 전환과 인증 및 모니터링 체계, 전체 가치사슬의 규모화와 전문화, 혁신적인 리더십, 선진국 소비자단체들과의 공정무역, 장기적인 파트너십 등을 쌓아왔다.

본 기획기사는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해온 두 명의 연구자가 인도 최남단 케랄라 지역을 방문하고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2022년 6월~23년 7월).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향신료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여러 도전과제 및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도전해 온 노력의 흔적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전 세계인의 과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케랄라의 향신료 농부들과 같은 농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이해와 공감,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말라바르 싱글오리진 후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주방에 구비 해놓는다는 후추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현재 후추는 베트남,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인도 남서부해안을 나타내는 말라바르(Malabar) 후추를 으뜸으로 친다.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해진 향신료 후추는 가격도 비싸지 않아 손쉽게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는 대중화된 상품이다. 하지만 커피가 지역과 농장, 품종에 따라, 가공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른 것처럼, 후추 역시 기후와 다양한 자연조건에 따라 다른 향과 맛, 영양성분을 갖고 있다. 

오늘은 말라바르 향신료를 베이스로 한 케랄라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케랄라를 가보기 전 인도 음식에 대한 필자의 이미지는, 탄두리 치킨으로 상징되는 강한 향신료의 맛과 진한 색을 띠는 것들이었다. 뉴델리를 비롯해 주로 북인도의 큰 도시 몇 군데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전 세계 어디나 있는 전형적인 인도음식점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다. 케랄라 음식은 이것과 완전히 다르면서도 결국엔 '참 인도스럽다고 인정하게 되는 그 무언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먼저 다양성이다. 각종 채소와 쌀, 곡물들을 비롯해 해산물 등 재료의 다양성과 풍부함에 이어, 같은 재료를 다양하게 변형하고 온갖 조리법을 동원한다. 여기에 후추, 강황, 생강, 카다멈, 넛맥, 정향, 시나몬 등의 말라바르 향신료와 약용식물들이 재료의 맛을 돋운다. 열매와 잎, 줄기, 뿌리, 씨앗 등 식물의 다양한 부위들을 골고루 사용한다. 두 번째로는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의 맛과 모양이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고 부드럽다. 자극적인 맛이 아닌데도 자꾸 찾게 되는 맛이랄까? 세 번째로는 진정한 베지테리언의 음식이다. 맛과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의 사찰음식이 필자에게는 비슷한 카테고리다. 케랄라 음식은 건강하고 다양하고 맛있다는 점에서 유제품이나 달도 먹지 않는 순수한 비건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맛과 영양을 갖추고 있다. 

케랄라 음식의 다양성은 서고츠산맥과 인도양, 길쭉한 해안선이 만들어낸 천혜의 자연환경과 고대 로마시대부터 여러 국가들과의 무역과 왕래, 그 결과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역사적 환경의 영향이다. 풍성하고 다양한 재료에 이어 오랜 시간 여러 문화와 사람들이 섞이면서 요리법도 함께 풍부해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먹을 기회가 없어 아쉬운 한 가지 음식은, 케랄라의 결혼식이나 각종 연회, 힌두교 축제인 오남(Onam)에서 제공되는 사디야(Sadhya)다. 바나나 잎에 쌀요리와 다양한 채식 요리들이 곁들여지는 순수 채식 메뉴다. 고기 없는 연회 음식이라! 육식 마니아들께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상하고 싶지 않겠지만, 비건지향의 삶을 살고 있는 필자로서는 경험해 보고 싶은 맛과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럼 이제 케랄라 음식을 소개해 보겠다. 
 

마살라 도사(Masala dosa)에 새콤달콤 고소한 코코넛 처트니(chutney) 

크레페 같기도 하고 메밀전병 같기도 한 케랄라 부침개는 이름이 '도사'다. 불린 쌀을 발효시켜 껍질 벗긴 우라드콩과 함께 간다. 우라드콩은 녹두만한 크기의 검은 렌틸콩이다. 이 묽은 반죽을 얇게 부친 것이 도사다. 폭신폭신하게 기름기없이 굽기도 하고 버터를 발라 좀 더 바삭하게 굽기도 한다. 별다른 재료도 안들어 간 이 부침개 같은 도사는 먹을 때마다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하나만 더 먹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게 신기했다. 밀을 많이 먹는 북인도와 달리, 남인도는 쌀이 주식이다. 길쭉한 쌀, 동글동글한 쌀, 큼직한 쌀, 노란색 쌀, 향신료 맛이 나는 쌀 등 쌀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들어가는 식재료와 향신료에 따라 각기 다른 커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음식에 따라 거기에 잘 어울리는 쌀로 밥을 짓는다. 도사에는 납작한 쌀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도사는 만두소처럼 다양한 재료로 만든 소를 싸서 먹는다. 마살라 도사에 싸먹는 소는 겨자씨, 쿠민, 고추, 마늘, 생강, 양파, 고수잎, 커리잎, 강황가루 등을 기름에 볶다가 삶아 으깬 감자를 넣어 함께 볶는다. '마살라'는 굽고 갈아 만든 양념들을 혼합한 인도요리의 기본 향신료를 뜻하는 힌디어다. 예전에는 인도의 집집마다 모두 다른 마살라 레시피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지금은 시중에서도 상품화된 다양한 브랜드의 마살라 가루를 구매할 수 있어서, 필자도 이 기회에 몇 가지 사 와서 조금씩 요리에 넣어 맛을 보고 있다. 
 

코코넛 처트니는 매콤한 칠리가 들어간 일종의 코코넛밀크 수프다. 여러 가지 향신료들과 커리잎이 들어가 있어서 고소하고 매콤하고 향기롭다. 국물로도 떠먹고 부드러운 도사를 푹 담가 먹으면 도사의 맛이 배가된다. 케랄라 음식의 주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코코넛이다. 생코코넛을 다지고 갈아서 넣기도 하고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기름이 자주 사용된다. 채식 인구가 많다고 알려진 인도지만, 특히 케랄라에서는 유제품이 아니더라도 코코넛이 다양한 용도로 채식 메뉴의 풍성함을 채워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패하지 않는 맛의 볶음밥, 비리야니(Biryani)

케랄라에서 방문한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를 경영하는 질슨 신부님이 가장 애정하는 메뉴는 바로 닭고기가 들어간 쌀요리 비리야니다. 식당마다 모두 메뉴를 갖추고 있을 만큼 현지인들이 즐겨하는 식사 메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다. 비리야니는 채소나 닭고기, 해산물 등에 여러 향신료와 식용유를 넣고 찌거나 볶은 쌀요리다. 단지처럼 생긴 질그릇에 쪄서 나온 것과 볶음밥으로 나온 것이 다른 맛이다. 필자의 입맛엔 질그릇에 쪄서 나온 비리야니가 훨씬 더 깊은 맛을 낸다. 취향에 따라 종류를 선택할 수 있어 좋다. 께랄라 지역엔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인지 필자가 선택한 채소 비리야니는 그 깊은 맛을 절대 잊을 수 없을것 같다. 
 

쌀로 만든 빵, 떡, 케익: 이들리(Idli), 푸뚜(Puttu), 아팜(Appam) 
쌀이 주식인 케랄라 지역에서 쌀가루로 만드는 다양한 음식들이다. 이들리는 발효시킨 쌀과 이들리콩으로 반죽하여 납작한 원형 찜기에 넣어 쪄먹는 빵이다. 우리나라 술빵과 비슷한 맛이 나면서 소화도 잘되는 느낌이다. 당근과 콩, 모링가, 감자 등 채소 커리를 부어 으깨어가며 함께 먹는다. 
 

푸뚜는 쌀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원통 모양에 반죽을 집어넣고 찐 음식이다. 우리나라 백설기같이 포슬포슬 따끈한 떡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접시에 덜고 병아리콩을 듬뿍 넣은 구수한 커리를 곁들여 먹는 담백한 아침 식사다. 

코코넛 밀크와 쌀 반죽으로 만드는 팬케이크의 일종인 아팜이다. 채소커리 스튜에 살짝 찍어 먹으면 달콤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촉촉하다. 이 음식은 남인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케랄라와 이웃하고 있는 타밀나두 지방과 스리랑카에서도 유명한 요리라고 한다. 야들야들하고 살짝 쫀득한 질감의 아팜은 도사처럼 버터를 발라 가장자리를 바삭하게 구운 것도 있다. 
 

차파티(chapati)와 난(Nann) 중에 뭘 먹지?

한국의 인도 음식점에 가면 다양한 카레와 탄두리 치킨 같은 메뉴를 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플레인 난, 갈릭 난 등을 주문하여 카레에 찍어 먹는걸 볼 수 있다. 이번 케랄라 여행에서는 난보다 차파티가 기본 메뉴로 더 많이 제공되기도 해서 그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차파티와 난은 발효를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차파티(위)는 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나 통밀가루, 메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부친 전병이다. 화덕에 굽기도 하고 라이팬에도 굽는데, 아유르베다 센터에서 먹은 차파티는 통밀이나 메밀로 만든 거라 그런지 좀 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난(아래)은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굽는 것으로 부풀어 오른 부분이 있고 질감도 차파티와는 전혀 다르다. 버터나 기름도 더 많이 두르기 때문에 차파티보다 부드럽고 유혹적인 맛을 낸다. 건강하고 담백한 차파티만 먹다가 코친 해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난을 먹어보니 순식간에 그 유혹에 빠져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있었다.

패스트리에 싸먹는 매콤한 구운 채소: 버터 파라타(Butter Parata)

패스트리처럼 얇게 몇 겹이 쌓여있는 파라타는 인도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버터를 발라 구운 빵이다. 여기에 매콤한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을 발라 매콤하게 구운 당근, 모링가 등 채소를 싸서 먹는다. 콩깍지처럼 초록색의 길쭉한 채소는 처음에 뭔가 싶어 찾아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모링가(moringa)라는 식물이다. 잎, 열매, 뿌리, 씨앗까지 영양분이 풍부하여 식용으로도 쓰이고, 케랄라에서는 아유르베다 재료로도 사용된다. 그 때문인지 케랄라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매콤하면서도 불맛이 나는 채소 한 쌈을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속이 편안하고 잠도 잘 오는 저녁이었다.

도넛 모양의 메두 바다(Medu Vada)는 길거리 음식으로도 사먹을 수 있는 렌틸콩 도넛이다. 검은 렌틸콩을 갈아서 반죽으로 만들어 도넛처럼 튀긴 것이다. 감자나 양파 등 채소로 소를 넣어 튀기는 도넛도 있다. 렌틸콩 특유의 고소한 맛에 기름이 어우러져 일반 밀가루로 만든 도넛과는 비교가 안되는 맛을 갖고 있다. 인도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마살라 커피나 마살라 홍차와 함께 출출한 오후 시간에 간식으로 먹는 메뉴라 할 수 있다.
 

채소커리와 볶음밥, 채소라씨, 샐러드에 스낵까지 푸짐한 배달음식

이번 케랄라 여행에서 방문한 곳 중에 산악부족 농부들이 지분을 투자하여 창업한 '농부생산자기업(Farmers’ Producer Company)'이 있다. 깊은 산중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조직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력들을 만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다양한 메뉴를 갖춘 푸짐한 집밥같은 배달 음식이 도착해 있었다. 가장 먼저, 커리 넣은 볶음밥에 온갖 종류의 채소와 콩, 감자가 들어간 커리를 얹어 먹는다. 그다음으로, 붉은 색깔의 스튜는 삼바르(Sambar)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비둘기콩, 작두콩, 모링가, 토마토, 고수잎, 커리잎 등 다양한 채소에 강황가루, 고추, 고수씨, 겨자씨, 새콤한 타마린드 등을 넣어 끓인 음식이다. 살짝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과 여러 가지 맛들이 뒤섞여 계속 떠먹게 만드는 매력적인 맛이다. 또한 인도식 발효 요거트 라씨에 갖은 채소들을 채썰어 넣고 매콤 칠리도 들어간 저 요리는 요거트도 아닌 것이 처음 먹어보는 오묘하고 상쾌한 맛이다. 삼바르와 라씨는 볶음밥에 얹어서도 먹고 따로 덜어서 먹어도 된다. 인터뷰에 함께 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들이 먹는 대로 따라서 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바삭한 스낵은 회사와 숙소 식당에서도 항상 나오는데 맛있어서 안 먹을 수가 없는 후식 메뉴다. 파파담(Papadam)은 렌틸콩, 병아리콩, 쌀, 타피오카, 기장, 감자 등을 갈고 여기에 흑후추, 소금, 식물성 기름을 섞어 반죽하여 튀기거나 바삭해지도록 구운 거라고 하는데 고소하고 약간 짭름한 맛에 자꾸 손이 간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이미옥은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사회혁신융합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공정무역 및 협동조합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 기후위기, 공정무역, 커먼즈, 사회적자본 등이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