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총선] 우리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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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총선] 우리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 2024.03.28 13:00
  • by 노윤정 기자
▲ 국회 본회의장 전경. ⓒ국회
▲ 국회 본회의장 전경. ⓒ국회

선거철이다.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뉴스를 봐도 정치권 현황 외의 다른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고, 3인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 모습들을 보자면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뽑을 사람이 없다."
"누구를 찍어도 똑같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이며 열변을 토하는 듯하면서도 냉소와 환멸이 짙게 깔려 있다. 한때 '정치 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정치 혐오'가 문제로 꼽힌다(물론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은 정치를 향한 냉소와 불만족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정서다). 진영을 나누고 편을 갈라 소모적인 대립을 반복하고, 정책 대신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려면 냉소와 환멸의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진 않다. '그놈이 그놈이다'는 말의 기저에는 정치인을 향한 불신과 어떻게 해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회의와 체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출마한 후보 중 누구를 뽑아도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 선거가 끝나고 벌어지는 일들

▲ 179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 한국은 47위에 올라 있다. 「민주주의 보고서 2024」 갈무리.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 179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 한국은 47위에 올라 있다(붉은 선으로 표시). 「민주주의 보고서 2024」 갈무리.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자신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에서 '수치심'과 폭력 치사 발생률의 연관성을 조명하고, 미국에서 특정 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폭력 치사 발생률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길리건 박사는 오랫동안 폭력 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 문제를 연구해 왔는데, 해당 저서에서는 '수치심과 치욕감은 자살과 살인의 동기가 되므로 자살률과 살인율을 모두 높인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정부 통계를 비롯한 각종 사회 지표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연구를 통해 소위 '가진 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 수준을 높이는 정당이 집권당이 됐을 때, 절대적·상대적 빈곤, 사회·경제적 지위 추락 등의 현상이 증가하고 이것이 사람들의 수치심과 치욕감을 자극하여 자살률과 살인율을 높인다고 파악했다.

외국의 사례가 멀게 느껴진다면 국내 정세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도록 하자.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브이뎀, V-Dem)가 지난 7일(현지시간) 발간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4」(Democracy Report 2024)는 지난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를 0.6로 발표했다(179개국 중 47위). 2020년과 2021년에는 0.79로 17위, 2022년에는 0.73로 28위를 기록한 결과를 함께 두고 보면, 지표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보고서는 한국의 사례를 "지난해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드물게 민주주의가 반등한 사례로 등장했던 한국이 최근 민주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South Korea-a country that was featured as a rare case of democracies that are bouncing back in last year’s Democracy Report-has recently reversed back to its pre-democratization episode levels)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국가(민주주의 지표 하락세가 뚜렷한 국가)로 분류된 42개국에 포함되기도 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브라질은 "독재를 막기 위한 '중요한 사건'으로 선거를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로 등장한다. 브라질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2022년도 0.53(58위)에서 2023년도 0.69(32위)로 크게 개선됐는데, 브라질은 2022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선을 치른 바 있다.

조금 더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다. 얼마 전 1만원을 호가하던 사과를 기억하는가? 최근 고물가로 신음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어떤 재정 정책으로 물가를 안정시킬지 여부도 결국 정치적인 문제다. 최근 떠들썩했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기조 속에서 어느 분야의 예산이 줄어들고 늘어나는지 결정하는 일 또한 당연히 정지적이며, 이 정치적인 결정은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이 자산 증식의 수단이자 자산 불평등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종부세 부담 완화'를 추진하며, 누군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 제고를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한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어떤 정책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당선돼야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유리할 것인가?

■ 그럼에도 정치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는 이유, 투표를 '잘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행사한 한 표가 우리 사회와 내 삶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무조건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가 모든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개인이 당면한 많은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며, 정치는 구조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일정 기간 위임하는 정치 체제다. 주권자는 시민인 우리다. 대리인이 주권자의 뜻을 제대로 대표하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와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에서 누구를 뽑든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말은 주권자로서 다소 무책임하게 들린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평등의 원리에 기초하여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구성원의 이해를 대변하며, 동시에 공통의 이익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갈등'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그 갈등을 다루는 일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정치다.

그러니 '정치적'이라는 수사를 기피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길리건 박사는 저서에서 "자살은 정치적인 문제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한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28일 0시, 4.10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곳곳에서 선거벽보를 비롯한 홍보 인쇄물을 볼 수 있고, 언론매체와 공개장소 연설 등을 통해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선거송'이 시끄럽다고 외면하지만 말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 그리고 그들이 주권자의 뜻을 대변하도록 목소리를 내자(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투표는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가 결국 정치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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