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해고승무원은 왜 4312일째 싸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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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해고승무원은 왜 4312일째 싸우고 있는가?
KTX해고승무원들, 18일 생명안전시민넷과 기자회견...19일 종교인들과 서울역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강행군
  • 2017.12.20 17:49
  • by 공정경 기자

“철도공사가 승무원은 안전업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안 되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었다.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담당하는지 안 하는지. 서울역사를 오가는 대부분의 시민은 ‘YES'(승무원이 안전업무를 담당한다) 칸에 스티커를 붙였다.

12월 18일 KTX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승객들과 함께 생명안전에 대한 OX퀴즈를 진행했고, 퀴즈에 참여한 승객들에게 떡을 나눠줬다.

이 지극히 당연한 답을 얻기 위해 KTX해고승무원들은 왜 11년이 지난 지금도 눈 속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것일까?

# 승무업무는 파견 허용 대상이 아니다

2006년 3월 1일부터 투쟁을 시작한 KTX해고 승무원들이 1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줄기차게 외치는 것은 승무원 직접고용이다. 애초 승무원들은 외부위탁의 대상이 아니었다. 2003년 9월 당시 철도청은 정부에 승무업무를 외주화할 경우 불법파견 소지가 없는지 물었다. 당시 노동부는 “승무업무는 파견 허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2004년 철도청에서 KTX개통할 때 3000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했지만, 정부의 공무원 억제정책에 따라 철도청은 553명만 충원하고 다른 인력은 무리하게 외주화로 충원했다. 외부위탁하면 안 되는 업무를 외주화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철도청이 승무원을 속였다는 점이다. 철도청은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고 채용 공고를 냈다. 당시 승무원 고용의 주체는 홍익회였지만 철도청이 승무원 채용과정에서 자신들이 채용의 주체인 것처럼 행사했다. 채용 당시 현재 공무원 인원을 늘릴 수 없으니 ‘1년 계약직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철도청은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됐다. 당시 약속대로 KTX승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면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2년 넘게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현행법을 피하고자 2006년 KTX승무원을 KTX관광레저로 옮기라고 했다.

# 1000명이 탑승하고 300km로 달리는 KTX에 안전담당은 열차팀장 한 명

2006년 3월 1일 KTX승무원들은 약속대로 철도공사는 직접 고용하라며 파업에 나섰다. KTX승무원은 철도공사 정규직과 같은 고유업무(안전 업무)를 하는데도 정규직화는커녕 자회사로 옮겨 다니게 한다며 계약을 거부했다. 이에 철도공사는 2006년 5월 파업에 참여한 승무원 280여명을 전원 해고한다. KTX해고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 받아왔다. 게다가 철도공사가 여승무원들을 직접 지휘·감독하였으므로, 이는 현행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파견근로였다. 불법파견근로 문제가 불거지자 철도공사는 KTX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고 안내업무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KTX해고승무원 입사 당시 승무 매뉴얼에는 안전 관련 규정이 있었고 교육의 절반도 안전업무 교육이었다. 2006년 철도공사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고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하는 비상메뉴얼을 제작한다. 2006년 3월 7일 철도공사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승무원들의 업무는 안전과 거의 무관하고 KTX 열차 내 안전담당은 열차팀장이다. 실제 지난 2월 25일부터 열차팀장 1인 승무를 시행하면서 하루 최고 160여회 운행한 결과 단 1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18량이라는 긴 열차, 승객 1000명을 태우고 300km로 달라는 KTX의 안전업무는 오직 열차팀장 한 명이 맡고 있다는 의미다. 설사 철도공사의 주장대로 KTX해고승무원이 서비스업무만 하더라도 외주위탁 할 수 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었다.

KTX 여승무원들은 지난 2008년, 2009년 철도공사를 상대로 두 건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낸다. 소송 전부터 노동부는 여승무원과 열차팀장이 독립적인 업무수행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2008년부터 시작된 법정 투쟁에서 1,2심 법원 역시 연달아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고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열차 내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공사의 열차팀장과 객실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들의 업무영역과 근무실태가 실제로는 중복되는 측면이 많았고 △공사는 승무원들의 채용, 교육, 징계 등에 관여하며 사실상 승무원들의 임금수준, 근무장소와 근무시간 등도 공사가 결정하였으며 △복장과 헤어스타일, 업무수행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등 공사가 하청업체인 홍익회나 철도유통 소속 노동자인 승무원들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의 지휘·명령을 행한 사실이 있었다. 법원은 철도공사와 한국철도유통의 위탁계약은 위장도급이라며 "따라서 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12월 18일 오전 11시 ‘KTX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와 ‘생명안전 시민넷’이 서울역 앞에서 KTX승무원의 철도공사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해고승무원 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스스로 드러낸 모순

2013년 8월 31일, 대구역에서 무궁화호가 KTX 열차를 측면에서 추돌하고, 탈선한 KTX열차를 마주 오던 다른 KTX열차가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열차의 열차팀장은 승무원 경험이 거의 없는 대체승무원이었기 때문에 출입문 수동 개폐나 열차 내 상황 판단이 미숙했다. 다행히 여승무원이 출입문을 개폐하여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매뉴얼 상으로 따지면 여승무원은 안내방송만 해야 했다. 업무지침을 어기고 안전업무를 했으니 월권을 행사한 격이다. 철도공사의 비상식적 주장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이 사고 이후 2013년 9월 25일 코레일 관광개발의 비상매뉴얼이 바뀐다. 안내 방송 외에 ‘이례사항 시 승객보호 및 사상자 구호’를 승무원 업무로 명시한다. 또한, 열차팀장이 안전 업무를 총괄 지휘하고 승무원은 열차의 총괄지휘에 따라 안전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철도공사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었다.

# 충돌하는 판결과 법

2015년 2월 26일 KTX해고승무원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고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판단한 원심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대법원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열차에서 근무하는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 하청 자회사 소속 열차승무원의 업무는 서로 무관하고, 열차팀장이 열차승무원에게 업무상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열차팀장은 안전을, 열차승무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업무가 분리돼 있어 적법한 도급이었다는 것이다. 즉 1000명의 열차를 운행하는 KTX 승무원 4명 중 1명만 안전업무를 담당했다는 뜻이다.

이 대법원 판결은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에서 선정한 2015년 최악의 판결이었고 한겨레21과 법학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선정한 2015년 ‘문제적 판결’에도 포함됐다. 민변 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간접고용의 문제를 더욱 확산시키고 불법적 파견에 면죄부를 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송당사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2015년 7월 24일 ‘철도안전법’이 개정되면서 승무원의 안전업무의 수행 여부에 대한 논란은 끝났다.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40조의2는 여객승무원이 철도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철도안전규칙에 정한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이를 위반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더라고 안전조치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 처벌을 물리도록 했다. 또한,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은 기관사와 열차승무원이 함께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정된 철도안전법은 열차팀장과 열차승무원의 업무를 구분해서 열차팀장에게만 안전업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안전과 서비스를 분리해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2003년 노동부의 답변과 같이 애초 승무업무는 파견 허용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후보 정책질의서 답변(2017.4.25)을 통해 "선박, 자동차, 철도, 항공기 등 여객운송사업과 해당분야의 정비, 승무업무 등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철도노조와의 정책협약(2017.5.1)에서 KTX해고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12월 19일 KTX해고승무원 복직과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종교인 오체투지가 서울역에서 청와대까지 진행됐다.  KTX해고승무원 4명과 개신교, 불교, 가톨릭, 노동계 대표 등 16명이 참석했다.
앞쪽부터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과 정미정 총무

김승하 지부장(KTX열차승무지부)은 지난 12월 18일(월) 오전 11시 서울역 앞에서 생명안전시민넷과 KTX해고승무원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4321일(12월 19일 기준) 동안 싸울 필요도 없었고, 싸울 수도 없었다"고 발언했다.

“사람이 죽지 않아서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 매일매일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 열차팀장 포함 4명이던 승무원이 지금은 3명으로 줄었다. 2명으로 줄이면 어떨까? 1명으로 줄이면? 열차팀장마저 없으면? 승무원 줄어드는 것이 당장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철도공사는 나 몰라라 하는 거다. 안전에 하나씩 하나씩 구멍이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매일같이 불이 나지 않는다고 소화기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듯,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승무원은 꼭 필요하다.”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긴 시간 싸울 수 없었다. 그랬다면 그 많은 사람이 지지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KTX승무원은 안전을 담당하기 위해서라도 직접고용이 돼야 한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 달라. 우리는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돌아가고자 지금까지 거리에 나와 있는 거다”

다음날인 19일(화) 오후1시30분 김 지부장은 서울역에서 청와대까지 향하는 'KTX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촉구하는 종교인 2차 오체투지'에 동료 해고승무원 3명과 함께 나섰다. 이어 오체투지에 참여한 종교인들이 뒤를 이었고, 그 뒤를 동료 여승무원들이 함께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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