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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선물해 준 난향동 고양이

기사승인 2019.11.25  15: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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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 돌봄을 '사회적 사업'으로 시험하는 '마을과고양이' 박용희 대표 인터뷰

평생 '집에 처박혀서' 만화만 창작할 줄 알았던 박용희 대표는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마을에 나다니기로' 결심했다. 심지어 어쩌다 이사 온 서울시 관악구 난향동에 정착하며, 길고양이의 인식개선을 위해 지속가능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을 만나게 한 고양이들 이야기, 그리고 동네 고양이를 위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짧지 않은 이야기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축적되었다.

어쩌다 난향동으로 들어온 생계형 만화가

난향동은 <응답하라1988> 세트장에 온 것처럼 조용하고 아담한 동네다. 주차공간도 한가해서 서울 천지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전·월세 저렴하다는 안내지가 눈에 띄었는데, 작가의 사업장이 세 들어 있는 다세대주택이었다. 평소 상도동에 사는 걸 자랑했는데 난향동은 상도동보다 더 조용하면서도 집세가 싸서 살고 싶은 동네 리스트로 올렸다. '마을과고양이' 사업체(?)를 짊어지고 있는 박용희 대표는 2013년에 난향동으로 들어왔다. 집세 싸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들어온 생계형 만화가로 먹고 사는 일이 급했다. 후배 만화가들도 따라 들어왔는데 여기로 오면서 만화작업 일이 많아졌다고 얘기할 정도로 이 곳은 운 좋은 거주지가 되었다.
 

ⓒ마을과고양이


그의 생업 중 하나는 교과서에 들어가는 만화나 삽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수학, 사회 교과서에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의 만화가 실려 있다. 주로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고 웹툰과 창작만화도 작업하고 있다. 만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입히는데 난향동은 좋은 배경이 되었다. 길고양이를 돌보고 밥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웹툰 스토리도 있는데 우연하게도 지금 작가의 모습은 몇 년 전에 완결한 웹툰에 담겨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생각지도 못했던 당시의 창작이 오늘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예견한 것이라니 소름이 돋는다"고 이야기했다.

'마을'을 선물해 준 난향동 고양이들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 것은 2015년 쯤. 작업실 창밖으로 왔다 갔다하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무심하게 밥을 주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이라고 믿었는데 발정 나면 싸움을 하고, 암냥이들은 계속 새끼들을 낳고, 새끼들은 잘살지도 못하고 꺼져가는 가느다란 생명체였다. 당시엔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해서 사체를 펼쳐놓는 일도 잦아서 길고양이 중성화가 절실했다. 최선은 아니어도 사람들 눈에 덜 띄려면 개체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생명과 관계 맺는 것, 죽었을 때 겪어야 하는 아픔, 그 두려움의 트라우마 때문에 절대 동물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난향동에 와서 눈에 들어오는 쓰레기 뒤지는 길고양이들, 겨울에 추워서 떨고 있는 모습, 그리고 잔인하게 고양이를 죽여 놓는 정황들이 동네고양이들을 돌보게 했다. 인터뷰 중에도 주인아주머니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시며 혼잣말을 하는데 작가가 먼저 동네를 떠돌던 유기견 안부를 건넨다. 두 분의 대사는 웬 시트콤처럼 주거니 받거니가 이어진다.

"복순이 잡았어요, 뱃속에 복수가 가득차서 응급수술하고 지금 입원했어요"

"위층 동생이 마당 구석에 고양이가 응가한다고 하네요. 제가 관찰해 볼께요"

아주머니 왈, "고양이 똥 아니고 개똥인데..."

날마다 밥을 주다 보니, 동네 사람들 눈에 띄게 되고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런데 슬금슬금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동네의 구성원이 되더라. 의도하지 않았는데 동네에 정착하고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팔자가 되었다. 박 대표는 "내가 동네를 떠난다면 내 밥을 먹는 고양이들을 다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동네에 눌러앉았지만 기왕 살 거라면 동네 주민으로 눌러 살아 보기로 했다. 동네 고양이 밥을 주게 된 주민 한 분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니 세상 모든 고양이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정말 묘한 운명과도 같다.
 

▲ 마음이 아픈 고양이 '못치'. 인터뷰 내내 야옹거리며 말을 거는 못치가 작업장에서 지낸다. '못생긴치즈'여서 못치인데 귀엽게 앵앵거리는 귀여운 치즈다. 입양가면 자꾸 파양되어 돌아왔다. 못치는 사람과 있으면 얌전한 고양이일 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혼자이면 외로워서 우울증이 오는데 고양이도 똑같다. 혼자이면 울고 외로움을 탄다. ⓒ라이프인


길고양이를 알리며 사업하는 소셜벤쳐 사업가

난향동 바로 옆 마을인 난곡에 '우리자리청소년공부방'이 있다. 20년 된 공부방이면서 지역공동체의 자산이다. 우리끼리 운영하자며 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사회적협동조합원의 한 사람으로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하는 곳에 따라갔다. 마을의 길고양이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했더니 멘토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도전해 보라며 바람을 넣었다. 육성사업팀 멘토들이 서류를 만드는 등의 어려워하는 업무를 많이 도와줬다. '마을과고양이'는 올 7월에 법인을 만들고 사업자등록을 했다. 법인을 만들기 전무터 난향동 고양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로 입혀 다양한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박 대표 본인이 디자인한 그림도 있지만 후배작가들이 선뜻 재능기부를 하며 그림을 주었다. 박 대표는 이런저런 전시회에 참가하며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리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뱃지 만드는 기계, 수채화 물감을 비롯하여 각종 그림 도구, 컵에 열을 가해 그림을 전사하는 기계까지, 사업장은 가내수공업을 연상케 하며 각종 기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와 있다. 지난 몇 개월은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 물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사업가로 급성장하게 된 시간이자 길고양이 문제를 알리는 열띤 시간이기도 하다. 관련 종사자에게 도움을 얻고, 물품제작을 상의하고, 홍보 나가고, 그리고 고양이들까지 돌보자면 잠시도 한가할 틈이 없다. 이렇게 오기까지, 앞으로 이렇게 가기까지 후배와 동료 작가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비슷한 은둔형인 성격의 후배는 목공까지 배우며 돕고 있고,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기꺼이 자신의 창작물을 내어주는 그들이 있어 '마을사업가'의 에너지는 그칠 줄 모르고 분출하고 있다.
 

▲ '마을과고양이'가 제작한 굿즈들. 난향동 고양이들이 모델이다. ⓒ라이프인


길고양이 돌봄을 사업모델로 만들어 가는 시험대는 생각보다 녹녹치 않다. 사업비를 쓰며 처리해야 하는 사무절차가 어렵고 낯선데 그것을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의 조력으로 ‘마을과고양이’는 운영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하는 'SEempower'의 도움으로 사회적기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마을과고양이'는 예비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지원사업 대상자여서 길고양이급식소를 만들어 보급하고,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개선사업으로 굿즈, 교육사업, 캠페인을 할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과 젊은 창업가를 위한 마켓에도 참여하고 있다. 오프라인상점에 동물관련 굿즈를 납품하고 있다. 팔리는 것도 기적인데 매출이 생겨서 수익금이 입금되는 너무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 동네 길고양이들 캐릭터와 스토리를 보고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수익금으로 길고양이를 돕는 굿즈들이 독립서점이나 다양한 판매처에 입점되면 좋겠고, 캐릭터화 된 고양이들 사연이 알려져 구매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길 바란다. 각종 축제장에 부스로 참여하는데 문구나 악세사리 장사가 목적은 절대 아니다.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이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2019국제도서전에서는 꽤 흥행한 부스이기도 했다. 홍보 현장에서 마을과고양이 부스 앞에 멈춘 사람들에게 기쁜 고백을 만난다. "사실 저도 길고양이 밥 줘요", 신앙 고백하듯 말하는 사람들처럼 수줍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보람도 몇 갑절 얻는다.

멈출 수 없는 소명, 길고양이 인식개선 캠페인

박 대표는 요즘도 주민들에게 길고양이에게 왜 밥을 줘야 하는지를 계속 알리고 있다. 그렇게 싸워대던 동네 고양이들은 중성화를 하고서 조용해지고 개체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요즘 만나는 주민들은 ‘그 고양이들 다 죽었냐’고 묻는다. 동네고양이들 중성화를 하고 나면 돌아오는 소감이다.

이제는 고양이들이 밥을 먹으니 똥을 싼다는 민원이 생겼다. 이것도 새로운 갈등으로 퍼질 우려가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냄새를 주민들이 불편해 하니까 관악구청 반려동물팀장이 동네에 길고양이화장실을 두는 문제를 고민하더니 해결책을 냈다. 길고양이화장실의 분변치우기 등은 관악구에서 노인일자리로 제공하고 있다.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것부터 분변을 치우는 것까지, 동네에서 해결하는 지혜의 소산이다.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다 보면 고양이 혐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작가이자 소셜벤쳐사업가인 박용희 대표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평생 그를 있게 한 큰 동력이라고 믿는다. 이런 재능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작가로 다가갔고,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지금의 '마을과고양이' 사업가, '동네고양이' 캠페이너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니 주민이 보였고, 예술교육으로 동네아이들을 만나며 치유받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바쁜데 청소년아동 미술심리치료 공부를 병행하며 동네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청소년기 때부터 만화를 그렸고,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믿었는데 20대 초반에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받고 우울증 비슷한 증세로 은둔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에너지가 늘 높다보니 그런 시절조차도 남들 눈에는 활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작품 창작과 기고는 꾸준히 해 왔다. 30대에 대학을 갔지만 형편상 서울예전을 딱 1주일 다녔다. 그런데도 선·후배, 동기, 그리고 은사님들까지 연줄이 줄줄이 생겼다. 배우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머물 만한 곳이 없어서 쉽지 않은 학교생활이었던 것을 알아주었는지 좋은 분들이 찾아주고 챙겨주었다고 한다. 꿈은 만화가였지만 생활고로 인해 여러 일을 했다. 출판사에서도 일했고, 연극 무대 세트 디자인을 해 본 경험도 있다.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만화가로 살겠다는 집념으로 다 포기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지나간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 '마을과고양이'의 박용희 대표와 고양이'못치' ⓒ라이프인


이 정도 듣다보니 수입이 궁금하다. 고정수입이 있냐고 물었더니 딱 까놓고 얘기한다. "없다. 아니 마이너스 이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하느라 작품 활동을 못하니 생계비는 마이너스 구조이다. 육성사업 지원비를 받지만 어디까지나 사업을 위한 지원이고 생활을 위한 지원은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찌어찌 일을 찾아서 하고 그 작은 소득으로 동네 고양이들 중성화도 사비로 해야 하고, 아픈 고양이들 치료해야 하니 돈이 벌어지긴 커녕 들어갈 구멍이 더 많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비단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했다. 그나마 박 대표는 요즘 알바로 삽화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엔 초등학생을 위한 참고서 작업과 웹툰 연재도 다시 시작할 것 같다.

마을에서 실험하는 캠페인과 사업

동네엔 몽실북스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고양이문제로 알게 되어 이제는 고양이도 함께 돌보고, 구조한 고양이를 분산수용해 주는 아군이 되었다. 서울시 예산으로 미성동, 난곡동, 난향동 주민들과 함께 만든 ‘반짝반짝 난곡별’을 몽실북스에서 책으로 묶어 출판한 적도 있다. 난곡 주민들이 만든 ‘난곡동 골목이야기’도 몽실북스에서 펴냈다.

난향동 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을 반대했다. 주민들이 재건축을 반대할 것 보면 생각이 무척 지혜롭다. 재개발되면 살던 주민들은 쫓겨나고 정겹게 지내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것을 이웃 동네의 아파트 개발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선정되었다. 주민들의 주도로 동네가 변화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예전에 '낙골 공부방'이었다가 쇼핑몰 사무실로 쓰이던 곳이 다시 '난초마을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 주민들이 모여 좋은 마을을 만드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박용희 대표는 동네출판사와 함께 마을책을 발간하고 동네사랑방에서 길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 진정한 '마을 살이'를 얘기할 수 있는 당사자였다. 열정의 캐릭터이자 무모한 용기의 발산자이다. 사회적 고정관념에 길들여 있지 않아 자유롭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스스로 파탄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걱정하지 않는데 후배들이 걱정한다며 웃는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 "이 집을 사는 것이 소망이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잘 보이고 있다. 고양이들이 거점 삼아 햇볕을 쬐던 집이라 포기할 수 없다."며 앞으로 웹툰을 연재하면 작업실이 필요하니 옆 칸도 임대할까? 하며 웃는다. 공동부엌, 동네고양이방, 그리고 공유 작업실이 필요하니 이 집이 탐날 만도 하다. 무인카페나 전시 공간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 집은 깔맞춤이다. 유럽처럼 동네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을과고양이'가 운영이 건실하여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정설경 객원기자 snow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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